역선택의 경제학
아픈 사람만 보험에 든다면
레몬 시장의 보험판 — 나쁜 정보가 좋은 상품을 시장에서 몰아낼 때
1970년, 조지 애컬로프는 중고차 시장을 관찰하며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왜 멀쩡한 중고차는 시장에 안 나오고, 하자 있는 "레몬"만 유독 많이 거래되는가. 답은 정보였다. 판매자는 차의 상태를 알지만 구매자는 모른다. 구매자가 평균적인 가격만 쳐주려 하면, 좋은 차를 가진 판매자는 손해라고 느껴 시장을 떠난다. 남는 건 나쁜 차뿐이고, 가격은 더 떨어지고, 그나마 남은 좋은 차도 마저 떠난다. 이 악순환의 끝에는 시장 자체의 붕괴가 있다. 보험 시장은 이 레몬 시장의 정반대 얼굴을 하고 있다 — 여기서 숨겨진 정보를 쥔 쪽은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 즉 가입자다.
1976년 마이클 로스차일드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 문제를 보험 모델로 정식화했다. 보험사가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보험료를 제시한다고 가정하자. 이 가격은 평균적인 위험을 반영한 가격이다. 그런데 저위험군 — 비흡연자, 건강한 30대 — 입장에서는 이 평균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게 느껴진다. 자신의 실제 위험보다 더 많이 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위험군부터 이탈한다. 남은 가입자 풀의 평균 위험은 올라가고, 보험사는 손해율 방어를 위해 보험료를 인상한다. 인상된 가격에서 또 한 번 저위험군이 이탈한다. 이 나선이 반복되면 시장에는 결국 최고위험군만 남거나, 그마저도 감당 못 할 보험료 앞에서 시장 자체가 사라진다. 로스차일드와 스티글리츠는 이 상황에서 안정적인 균형은 모두가 같은 조건으로 가입하는 "통합균형"이 아니라, 위험도별로 다른 조건을 제시해 스스로 분리되게 만드는 "분리균형"뿐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 언더라이팅은 바로 이 분리균형을 인위적으로 설계하는 기술이다.
한국 실손보험의 갱신형 구조가 이 이론의 실사판이다.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은 위험도와 무관하게 유사한 조건으로 가입자를 받았고, 의료 이용량이 많은 가입자일수록 이 상품의 가성비를 정확히 알아보고 몰려들었다. 저위험 가입자는 상대적으로 손해라고 느끼며 이탈하거나 애초에 가입하지 않았다. 남은 풀의 손해율이 치솟자 보험사는 갱신 시점마다 보험료를 큰 폭으로 올렸고, 그 인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이용이 많아 보험이 꼭 필요한 고위험 가입자들이었다. 저위험 가입자는 그 사이 더 이탈했다. 이것이 4세대 실손보험이 비급여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화하는 "할인·할증제"를 도입한 이유였고, 2026년 5월 출시된 5세대 실손보험은 이 원리를 한 단계 더 밀어붙였다 — 비급여를 중증(특약1)과 비중증(특약2)으로 아예 나눠, 중증 비급여는 보장을 유지·강화하되 비중증 비급여는 자기부담률을 30%에서 50%로 높이고 보장 한도를 축소해 분리균형 자체를 상품 구조 안에 새겨 넣었다. 통합균형이 무너진다는 걸 시장이 몸으로 두 번 확인한 셈이다.
언더라이팅은 이 역선택의 나선을 사전에 끊기 위한 장치다. 건강진단서, 흡연 여부 확인, 가족력 질문지는 전부 로스차일드-스티글리츠가 말한 "분리균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도구다. 비흡연자 할인 특약이 대표적이다 —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같은 요율로 받으면 비흡연자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이탈하므로, 아예 처음부터 스스로 증명하게 만들어 분리시킨다.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분리된 위험이 실제로 표준체, 우량체, 거절체라는 세 등급으로 어떻게 나뉘는지 — 그 등급표가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