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체·우량체·거절체
위험의 세 등급이 만들어지는 법
평균이라는 허구 — 보험사는 왜 "보통 사람"을 세 등급으로 쪼개는가
2화에서 본 분리균형은 이론상으로는 위험도만큼 촘촘하게 나눌수록 정확하다. 하지만 실무의 언더라이팅은 개인별 맞춤 가격이 아니라 몇 개의 등급으로 뭉뚱그린다. 우량체, 표준체, 표준미달체, 거절체 — 대개 이 네 단계다. 이유는 명확하다. 위험을 촘촘하게 나눌수록 계리적으로는 정확해지지만, 심사 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소비자는 자신이 왜 그 등급을 받았는지 설명받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보험 산업은 정밀함과 실행 가능성 사이의 타협점으로 몇 개의 이산적인 등급을 택했다. 이 타협 자체가 언더라이팅의 두 번째 역설이다 — 완벽한 공정함보다 "충분히 정확하고 충분히 빠른" 분류가 산업을 지탱한다.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크게 세 축으로 구성된다. 신체적 위험(체격, 혈압, 혈당, 병력), 습관적 위험(흡연, 음주, 운동량), 그리고 환경적 위험(직업, 취미, 거주 국가)이다. 각 축마다 점수를 매기고 합산하는 방식이 미국식 "포인트 시스템(numerical rating system)"이다. 표준체를 100점 기준으로 놓고, 고혈압 병력이 있으면 +25점, 흡연자면 +50점, 위험한 취미(스카이다이빙 등)가 있으면 별도로 할증되는 식이다. 합산 점수가 100~125점이면 우량체 또는 표준체, 125~200점이면 표준미달체로 할증 보험료를 부과하고, 200점을 넘거나 특정 절대적 결격 사유(말기 질환, 최근 암 진단 등)가 있으면 거절체로 분류돼 인수 자체가 거부된다. 이 숫자 체계의 장점은 명확한 재현성이다 — 어느 언더라이터가 심사해도 같은 정보라면 같은 점수가 나오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이 포인트 시스템에는 구조적 사각지대가 있다. 점수표는 과거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와 다를 때 특정 집단이 실제 위험과 무관하게 불리한 등급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직업 코드다. 육체노동 직군은 산재 통계상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일괄적으로 할증되지만, 그 안에서도 사무직에 가까운 안전관리자와 고소작업자의 실제 위험은 크게 다르다. 세분화 비용이 그 차이를 반영하지 못할 만큼 크면, 보험사는 "그 정도 오차는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하고 뭉뚱그린 등급을 유지한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등급표는 위험의 진실이 아니라, 보험사가 감당 가능하다고 판단한 오차 범위의 결과물이다.
한국 시장에서 이 등급 체계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간편심사보험이다. 일반심사 상품이 앞서 설명한 다축 포인트 시스템을 정교하게 적용하는 반면, 간편심사 상품은 질문 3~5개로 단순화해 표준체·표준미달체를 가른다. 질문이 줄어든 만큼 정보의 정밀도는 떨어지고, 그 손실분은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에 반영된다. 즉 간편심사는 "심사를 안 하는" 상품이 아니라, 정밀한 등급 산정을 포기하는 대가로 더 넓은 가입 문턱과 더 높은 보험료를 맞바꾼 상품이다. 다음 화에서는 이 등급 산정의 전제 자체를 흔드는 문제 — 신청자가 등급 산정에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숨기거나 왜곡할 때, 즉 고지의무 위반이 어떻게 전쟁으로 번지는지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