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표준, 3·5·5
역사 ② — 간편고지가 상품이 되던 순간
첫 표준, 3·5·5
역사 ② — 간편고지가 상품이 되던 순간 | 유병자보험의 숫자 4화
질문을 줄이고 그 대가를 보험료에 얹는다는 발상이 실제 상품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발상은 단순했지만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려면 세 가지가 동시에 필요했다. 걸러지지 않은 위험의 크기를 추정할 데이터, 그 추정을 받아들일 재보험과 내부 리스크 관리,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비싼 상품을 팔아 줄 채널이다. 2010년대 초중반, 이 셋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손해보험사가 먼저 움직였다
초기 간편고지 상품의 상당수는 손해보험사에서 나왔다. 장기 인보험 시장에서 진단비와 수술비, 입원일당 같은 정액 담보를 조합해 파는 구조가 이미 자리 잡고 있었고, 이런 담보는 생명보험의 사망보장에 비해 계약 한 건당 위험 노출이 작다. 위험이 작으면 실험이 쉽다. 잘못 설계해도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 크기에서 먼저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고령층과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가 이미 채널에 쌓여 있었다. 거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명단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정확한 잠재 고객 목록이었다. 텔레마케팅과 홈쇼핑은 그 목록을 향해 "이제는 되는 상품이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의 문법은 관대하지 않았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초기 상품의 문턱은 상당히 높았다. 첫 표준이라 부를 만한 형태가 3·5·5, 즉 최근 3개월의 진단·검사 소견, 최근 5년의 입원·수술, 최근 5년의 중대질병을 묻는 구성이었다.
가운데 자리가 5였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5년 안에 하루라도 입원했거나 수술을 받은 사람은 걸러졌다는 뜻이고, 이 조건은 중장년층에게 생각보다 촘촘하다. 맹장 수술, 백내장 수술, 디스크 시술, 심지어 출산으로 인한 입원까지 이 그물에 걸릴 수 있었다. 유병자를 위한 상품이라고 이름 붙었지만 실제로는 "큰 병 없이 지내 왔으나 지금 약을 먹고 있는 사람" 정도가 주된 인수 대상이었다.
보수적으로 출발한 이유는 명확하다. 참조할 경험통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턱을 낮게 잡았다가 손해율이 폭발하면 상품을 접어야 하고, 접은 이력은 다음 상품의 인가와 재보험 협상에 그대로 따라붙는다. 반대로 문턱을 높게 잡고 시작하면, 몇 해치 실제 청구 데이터를 쌓은 뒤 그 근거로 한 칸씩 내려올 수 있다. 초기 설계자들이 택한 것은 후자였고, 이후 10여 년의 역사는 그 한 칸씩의 하강 과정이다.
감액기간이라는 안전판
문턱만으로는 부족했다. 질문을 줄인 만큼 계약 직후의 청구 위험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상품에는 거의 예외 없이 감액 장치가 붙었다. 가입 후 일정 기간 안에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약정 보험금의 절반만 지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장치의 의미는 계약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중요하다. 유병자 상품에서 실제 보장이 온전해지는 시점은 계약일이 아니라 감액기간이 끝나는 날이다. 지금도 상담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항목이며, 같은 세 자리 숫자를 가진 두 상품이라도 감액 조건이 다르면 완전히 다른 상품이다. 숫자는 문턱을 말해 줄 뿐, 문턱을 넘은 뒤의 몇 년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이름의 혼란 — 심사인가 고지인가
초기에 이 상품군은 흔히 간편심사보험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이름은 오해를 낳는다. 심사가 간편해진 것이 아니라 고지 항목이 줄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계약자가 답해야 할 질문은 줄었지만, 보험사가 뒤에서 수행하는 심사와 청구 시점의 조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오해는 실제 분쟁으로 이어졌다. 질문이 적으니 대충 답해도 된다고 받아들인 계약자, 심사가 없으니 고지의무도 없다고 설명한 판매자가 있었고, 그 결과가 몇 해 뒤 계약 해지 통보로 돌아왔다. 업계가 점차 간편고지라는 표현으로 정리해 간 배경에는 이런 사고 경험이 있다. 이름 한 단어의 차이가 아니라, 무엇이 간편해졌는지를 정확히 가리키는 문제였다.
판매가 상품을 앞질렀다
시장이 커지자 예상된 문제가 터졌다. 일반심사 상품에 충분히 가입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간편고지 상품을 파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간편고지 상품은 보험료가 높아 수수료 기반이 크고, 심사에서 되돌아올 확률이 낮아 성사율도 높다. 계약자는 자신이 더 싼 선택지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감독당국은 이 지점을 반복해서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판매 과정에서 일반심사 상품과 간편고지 상품을 비교해 설명하고, 계약자가 일반심사로 가입 가능한지를 먼저 확인하도록 하는 절차가 자리 잡았다. 지금도 유효한 원칙이다. 간편고지는 일반심사에 걸린 사람을 위한 상품이지, 절차가 편하다는 이유로 먼저 고를 상품이 아니다.
데이터가 쌓이자 가운데 자리가 내려왔다
몇 해가 지나자 초기 상품들의 실제 청구 데이터가 쌓였다. 5년 이내 입원·수술 이력자를 받지 않았을 때의 손해율, 그 문턱을 3년이나 2년으로 낮췄을 때의 예상 손해율을 이제 자기 회사 숫자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가 가운데 자리의 하강이다. 5에서 3으로, 다시 2로 내려오면서 3·2·5 가 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첫 자리 3개월과 마지막 자리 5년은 그대로였다. 2화에서 본 대로 그 둘은 각각 현재 진행 중인 위험과 재발성 중대질병을 걸러 내는 장치라, 손대는 순간 상품의 위험 구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쟁은 한 칸씩만 움직였다
이 시기 경쟁의 양상에는 특징이 있다. 어느 회사도 한 번에 두 칸씩 내려가지 않았다. 경쟁사가 3년으로 내리면 다음 회사가 2년으로 내리고, 그 사이 시장은 새 조건에서 들어온 계약의 청구 추이를 지켜보았다.
이 신중함은 보험산업 특유의 시차에서 온다. 잘못된 가격 결정의 결과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계약은 지금 들어오고 청구는 몇 년 뒤에 온다. 오늘 문턱을 낮춰 얻은 계약 건수는 즉시 실적이 되지만, 그 대가는 3년 뒤 손해율 표에 나타난다. 유병자 시장의 문턱이 계단식으로만 내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얼마나 비쌌는가
초기 간편고지 상품의 보험료는 같은 담보의 일반심사 상품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 상품과 연령, 담보 구성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체감상 수십 퍼센트에서 두 배 가까이 벌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이 격차의 정체를 오해하면 안 된다. 유병자에게 매기는 벌금이 아니라, 걸러지지 않고 들어온 위험의 값이다. 질문 하나를 없애면 그 질문에 걸렸을 사람들이 풀 안에 남고, 그들의 예상 청구액이 전체 계약자에게 나뉘어 얹힌다. 게다가 이 풀에는 자기 몸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 들어오는 경향이 강하다. 역선택의 강도가 표준체 풀보다 높으니 안전할증도 두꺼워진다.
여기서 유병자 시장의 근본 구조가 드러난다. 문턱을 낮추면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지만 보험료는 오른다. 문턱을 높이면 보험료는 내려가지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 세 자리 숫자는 이 교환 관계 위에서 회사가 고른 좌표를 공개하는 표기이며, 8화에서 이 교환의 산수를 정면으로 다룬다.
판매 현장의 언어도 바뀌었다
상품이 표준화되자 판매 언어도 달라졌다. 초기의 "누구나 가입"이라는 문구는 점차 "세 가지만 확인하면 됩니다"로 옮겨 갔다. 표면적으로는 정확해진 표현이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남는다. 세 가지를 확인한다는 말은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걸리면 안 된다는 뜻인데, 판매 현장에서 그 부정의 무게는 좀처럼 강조되지 않는다.
숫자로 상품을 부르는 관행이 자리 잡은 것도 이 무렵이다. 회사마다 다른 상품명 대신 3·5·5 나 3·2·5 라고 부르면, 서로 다른 회사의 상품을 같은 축 위에 놓고 비교할 수 있다. 판매자에게는 실무 속기였고 소비자에게는 암호였던 이 표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상품명 안으로까지 들어오게 된다.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증거
이 시기를 지나며 유병자 상품은 특수 상품에서 주류 상품군으로 옮겨 갔다. 판단 근거는 단순하다. 대형사들이 이 시장에 들어왔고, 같은 브랜드 아래 일반심사형과 간편심사형을 나란히 배치하기 시작했다. 변방의 실험 상품이라면 회사의 간판 상품 라인업에 나란히 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배치가 다음 국면을 예고했다. 한 상품 안에 심사 강도가 다른 여러 갈래를 두는 구조는, 훗날 3·6·5 와 3·10·5 같은 새로운 숫자가 등장할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둔 것이었다.
다음 화에서는 이 민간 경쟁의 흐름과 나란히 진행된 또 하나의 사건 — 정책이 직접 만든 유병자 상품, 유병력자 실손의료보험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