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체사고와 과실상계
내 잘못까지 보장되는가
자기신체사고와 과실상계
내 잘못까지 보장되는가 판례로 읽는 보험 13화
같은 부상, 다른 계산법
교차로에서 신호를 착각해 진입한 운전자가 다른 차와 충돌해 크게 다쳤다고 하자. 상대 차량의 과실도 일부 있었지만, 사고의 주된 원인은 본인의 신호 위반이었다.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배상액은 본인 과실 비율만큼 깎인다. 이것이 과실상계다. 문제는 자기 자동차보험에서 자기 몸의 부상을 보상받을 때에도 이 과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느냐는 것이다.
자동차보험에서 운전자 본인과 그 가족, 동승자의 부상을 보상하는 담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오래된 표준형 담보인 자기신체사고(자손)와, 이를 대체·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자동차상해(자상)다. 두 담보는 '내 차에 탄 사람의 인적 피해를 내 보험으로 보상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손해를 산정하는 방식과 과실을 다루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차이를 모르고 가입하면, 정작 큰 사고가 났을 때 예상보다 훨씬 적은 보험금에 당황하게 된다.
이 두 담보의 비교는 단순한 상품 설명을 넘어, 인보험(사람의 생명·신체에 관한 보험)과 손해보험(재산상 손해의 전보에 관한 보험)의 경계에 걸쳐 있는 흥미로운 법리적 긴장을 드러낸다. 자동차보험은 하나의 증권 안에 대인배상·대물배상 같은 전형적 손해보험 담보와, 사람의 부상을 다루는 상해 성격의 담보가 함께 담겨 있는 복합 상품이다. 그 안에서 자손과 자상은 '내 편에 선 담보'로서, 상대방을 위한 배상책임보험과는 방향이 반대다. 이 방향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고 후 대인배상과 자손·자상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놓치기 쉽다.
자기신체사고 — 정액·한도의 세계
자기신체사고는 전통적으로 정액·한도형 담보로 설계되어 왔다. 상해급수와 후유장해 등급에 따라 사망·후유장해·부상별로 지급 한도가 미리 정해져 있고, 실제 치료비가 그 한도를 넘더라도 한도까지만, 그 안에서라면 실손해 범위에서 지급되는 구조다. 즉 '얼마의 손해가 났는가'보다 '어느 등급에 해당하는가'가 지급액을 좌우하는 성격이 강했다.
여기에 더해, 과거 자기신체사고 약관은 지급보험금을 계산할 때 피보험자 본인의 과실이나 상대 차량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배상액 등을 공제하는 구조를 두고 있었다. 예컨대 사고로 인한 실제 손해가 있더라도, 상대방 대인배상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빼고 남는 부분을 자기신체사고에서 채워 주는 식이다. 이 때문에 상대방 과실이 크면 대인배상에서 많이 받아 자손 지급액이 줄고, 반대로 본인 과실이 크면 대인배상에서 적게 받는 대신 자손이 그 공백의 일부를 메우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 설계의 취지는 이중보상을 막고 보험료 수준을 낮게 유지하는 데 있었다. 정액·한도형은 손해액을 일일이 다투지 않아 분쟁이 적고 지급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큰 부상에서는 한도가 실제 손해에 크게 못 미쳐 '보상의 공백'이 생긴다는 한계가 뚜렷했다. 특히 본인 과실이 큰 단독사고나 일방 과실 사고에서 그 공백은 더 커진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과실이 반영된다'는 말의 의미다. 자기신체사고의 지급구조에서 과실 내지 다른 배상액이 공제된다는 것은, 피보험자에게 손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손해 중 다른 경로로 메워질 수 있는 부분이나 본인 책임으로 돌아갈 부분을 자손이 이중으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대방 대인배상에서 충분히 받았다면 자손은 거의 나오지 않고, 받을 곳이 마땅치 않은 단독사고에서는 자손이 등급 한도 안에서 제 역할을 한다. 문제는 그 한도가 중상해의 실손해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으로 설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자동차상해 — 과실을 묻지 않는 담보
이 공백을 겨냥해 등장한 것이 자동차상해다. 자동차상해는 피보험자의 실제 손해를 약정한 보험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원칙적으로 피보험자 본인의 과실을 상계하지 않고 보상한다. 치료비뿐 아니라 위자료, 휴업손해, 상실수익액 등 대인배상에서 인정되는 손해 항목을 폭넓게 반영해, 본인 과실이 큰 사고에서도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핵심은 '과실상계 없이'라는 부분이다. 손해배상의 세계에서 과실상계는 피해자가 스스로 초래한 손해까지 가해자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공평의 원칙에서 나온다. 그러나 자동차상해는 가해자에 대한 배상청구가 아니라 내가 낸 보험료의 대가로 내 손해를 메우는 구조다. 여기서는 '누구의 잘못인가'보다 '얼마의 손해가 났는가'가 중심에 선다. 그래서 신호를 위반한 본인 과실 90%의 사고라 하더라도, 자동차상해에서는 그 90%만큼 깎지 않고 실손해를 한도 내에서 채워 준다. 다만 자동차상해도 무제한이 아니라 가입금액 한도의 제약을 받고, 음주·무면허 등 약관상 면책사유는 그대로 적용된다.
이 차이를 숫자로 그려 보면 분명해진다. 본인 과실이 큰 사고에서 실제 손해가 상당한 규모에 이르렀다면, 정액·한도형 자손에서는 등급 한도와 과실 공제에 막혀 실손해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만 나올 수 있다. 반면 자동차상해에서는 과실을 상계하지 않으므로 한도 안에서 실손해에 훨씬 근접한 보상이 가능하다. 보험료는 자동차상해가 다소 높지만, 큰 사고 한 번의 차이를 생각하면 그 격차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다만 자동차상해가 '과실을 묻지 않는다'는 명제도 무한정 확장해서는 안 된다. 이 담보 역시 손해의 산정 단계에서 위자료나 상실수익액 등을 계산할 때에는 대인배상의 손해 산정 기준을 원용하는 부분이 있고, 상대방으로부터 이미 받은 배상이 있다면 그만큼은 조정되어 같은 손해를 이중으로 전보받지는 못한다. '과실상계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실제 손해를 초과해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자동차상해는 어디까지나 실손해를 한도 안에서 메우는 담보이지, 사고를 이득의 기회로 바꾸어 주는 장치가 아니다.
인보험적 성격과 법리의 긴장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흥미로운 법리 문제가 있다. 사람의 신체를 보험의 목적으로 하는 인보험에서는, 상법상 보험자가 보험사고로 생긴 피보험자의 권리를 대위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손해보험의 청구권 대위 법리를 인보험에 그대로 끌어오기 어렵다는 뜻이다. 자기신체사고와 자동차상해는 '사람의 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보험적 색채를 띠지만, 실제 손해를 전보한다는 점에서는 손해보험적 성격도 함께 지닌 이른바 혼합적 성격의 담보다.
이 때문에 법원은 이들 담보의 성격을 획일적으로 재단하기보다, 개별 약관의 문언과 그 담보가 어떤 손해를 어떤 방식으로 메우려 설계되었는지를 따져 판단해 왔다. 정액·한도형 자손에서 다른 배상액을 공제하는 조항의 효력, 자동차상해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배상과의 조정, 보험자가 지급 후 가해자에게 구상할 수 있는 범위 등은 모두 '이 담보가 순수한 정액보험인가, 실손해를 메우는 부정액보험인가'라는 성격 규명에서 출발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담보의 법적 성격을 그 지급구조와 약관 취지에 비추어 실질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 지점에서 계약자와 보험사의 논리는 정면으로 부딪친다. 계약자 측은 자기 몸의 부상을 자기 보험료로 대비한 것이니 실제 손해를 폭넓게 메워 달라고 주장한다. 보험사 측은 담보의 성격과 약관 문언이 정한 한도·공제 구조를 넘어 지급하는 것은 이중보상이자 보험료 수준과 맞지 않는 부담이라고 맞선다. 어느 한쪽의 감정이 아니라, 그 담보가 애초에 어떤 손해를 어떤 값으로 메우기로 하고 보험료가 책정되었는가라는 설계의 문제로 접근해야 답이 보인다. 자손과 자상의 보험료 차이는 바로 이 보상 범위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성격 규명은 보험료의 대가성과도 맞닿아 있다. 정액·한도형 자손은 낮은 보험료로 최소한의 대비를 제공하는 상품이고, 자동차상해는 그보다 높은 보험료로 실손해에 근접한 두터운 보상을 약속하는 상품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각자가 약속한 보상의 무게가 다를 뿐이다. 분쟁이 생겼을 때 법원이 확인하는 것도 결국 '이 계약자가 어떤 담보를, 어떤 조건으로 사서 어떤 보상을 약속받았는가'이다.
계약자 입장에서 실무적 교훈은 명확하다. 과실상계는 '상대방에게 배상을 청구할 때 내 잘못만큼 깎이는 것'이지, 내 보험이 언제나 그것을 대신 메워 주는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신체사고만 가입해 두었다면 본인 과실이 큰 사고에서 보상의 공백을 감수해야 할 수 있고, 자동차상해로 전환·보완해 두었다면 그 공백이 크게 줄어든다. 자기 몸의 부상을 어느 담보로, 얼마의 한도로 준비해 두었는가는 사고가 나기 전에 확인해야 할 문제다. 두 담보의 이름은 비슷하지만, '내 잘못까지 보장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서로 다르다.
가해자에게 배상 능력이 없거나, 애초에 가해 차량이 보험조차 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무보험·뺑소니 차량에 의한 피해를 내 보험으로 우선 메우는 무보험차상해 담보의 구조와, 그 뒤에 이어지는 가해자에 대한 구상의 법리를 살펴본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의 결론은 구체적 약관 문언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 분쟁은 손해사정사·변호사 또는 금융감독원(1332)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