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URANCE RESEARCH · 유병자보험

숫자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3·6·5와 3·10·5 — 문턱을 높여 파는 유병자 상품의 등장

약 4분 읽기 · Updated 2026-07

숫자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3·6·5와 3·10·5 — 문턱을 높여 파는 유병자 상품의 등장 | 유병자보험의 숫자 7화


지금까지의 역사는 한 방향이었다. 5에서 3으로, 3에서 2로, 2에서 1로. 문턱은 계속 내려왔고 그것이 진보로 여겨졌다. 그런데 2020년대 중반의 상품 공시를 열어 보면 정반대 방향의 숫자가 나타난다. 6과 10이다. 유병자 상품에 붙은 숫자가 커진다는 것은 문턱이 높아진다는 뜻인데, 그런 상품을 왜 굳이 만들어 파는가.

공시에 실제로 적혀 있는 숫자들

추측이 아니라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26년 7월 시점의 상품 자료를 보면 두 개의 사례가 눈에 띈다.

하나는 KB손해보험의 간편건강보험이다. 상품명 자체에 3.N.5 라는 표기가 들어가 있고, 인수 관련 표기에는 그 N 이 6부터 10까지 움직인다고 적혀 있다. 즉 하나의 상품 안에서 3·6·5 부터 3·10·5 까지의 등급이 공존한다.

다른 하나는 삼성생명의 건강보험이다. 이 상품은 종별로 심사 방식을 나누는데, 3종 안에서도 1형에는 3.10.5 를, 2형에는 3.5.5 를 적용한다. 같은 상품, 같은 약관 아래 두 개의 문턱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1종은 아예 건강고지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두 사례가 말하는 바는 같다. 상품 하나에 문턱 하나라는 오래된 대응이 깨졌다는 것이다.

3·10·5 는 무엇을 묻는가

세 자리를 그대로 풀면 이렇다. 최근 3개월 이내의 진단·검사 소견, 최근 10년 이내의 입원·수술, 최근 5년 이내의 중대질병.

10년이라는 기간은 일반심사 상품이 묻는 5년보다도 길다. 표준 청약서가 5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리에서 이 상품은 10년을 묻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병자 상품인가 아닌가.

여기서 간편고지의 본질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간편고지의 정의는 묻는 질문의 개수가 적다는 것이지 기간이 짧다는 것이 아니다. 일반심사 청약서는 열 개 안팎의 항목을 묻고 그중 어느 하나에라도 걸리면 개별 심사로 넘어간다. 반면 3·10·5 는 여전히 세 개만 묻는다. 직업·운전·음주·흡연·체중, 통원 치료와 투약 이력, 부위별 병력은 묻지 않는다. 기간은 길지만 질문의 폭은 좁은 것이다.

그래서 이 상품이 겨냥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진다. 약은 먹고 있지만 큰 사건은 없었던 사람.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10년째 복용하지만 입원한 적도 수술받은 적도 없는 사람은 일반심사에서는 투약 이력 때문에 성가신 심사를 거쳐야 하고, 3·2·5 에서는 통과하지만 그 상품 특유의 높은 보험료를 낸다. 3·10·5 는 정확히 이 사람을 위한 자리다.

세분화의 계리적 논리

이 구조가 왜 합리적인지는 풀(pool)의 관점에서 보면 명확하다.

3·2·5 라는 하나의 등급 안에는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다. 8개월 전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사람과, 10년째 사건 없이 약만 먹는 사람이 같은 보험료를 낸다. 이 경우 후자가 전자를 보조하는 교차보조가 발생한다. 그리고 자기 위험을 아는 사람일수록 이 구조를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빠져나가고 위험이 두꺼운 사람만 남는 방향으로 풀이 기운다.

등급을 쪼개면 이 문제가 완화된다. 문턱이 높은 등급에는 위험이 얇은 사람이 모이고 그만큼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 문턱이 낮은 등급은 위험이 두껍지만 그 값을 제대로 받는다. 각 풀의 가격이 그 풀의 실제 위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3·N·5 라는 표기는 회사가 "우리는 하나의 가격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가격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하는 방식이다.

소비자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이 변화는 원칙적으로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자신의 이력이 깨끗한 쪽에 가깝다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선택지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며 두드리는 순서다. 가장 높은 문턱부터 시작해 걸리면 한 칸 내려온다. 3·10·5 를 먼저 시도하고, 8년 전 수술 이력에 걸리면 3·5·5 로 내려오고, 거기서도 걸리면 3·2·5 로, 다시 3·1·5 로 내려온다. 이 순서를 지키면 자신이 통과할 수 있는 가장 싼 자리를 찾게 된다.

반대 방향으로 접근하면 손해가 확정된다. 가장 낮은 문턱의 상품부터 권유받아 가입하면, 통과는 쉽지만 실제 위험보다 비싼 값을 평생 낸다. 그리고 이 차액은 한 번의 손해가 아니라 20년, 30년의 납입 기간 내내 반복된다.

그런데 이 순서를 누가 정하는가

여기에 이 국면의 새로운 위험이 있다. 등급 선택이 사실상 판매자에게 위임된다는 점이다.

계약자는 자기 이력이 어느 등급을 통과하는지 스스로 계산하지 못한다. 그래서 설계사가 제시하는 등급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판매자에게는 낮은 등급을 권할 유인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 문턱이 낮으면 보험료가 높고, 보험료가 높으면 수수료 기반이 커지며, 심사에서 되돌아올 확률도 낮아 성사율이 올라간다. 계약자의 이익과 판매자의 이익이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지점이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에 기댈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방어책도 구조적이어야 한다. 상담에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제 이력으로 통과 가능한 가장 높은 등급은 무엇이고, 그 등급의 보험료는 얼마입니까." 이 질문을 받은 순간 판매자는 등급별 보험료를 나란히 제시해야 하고, 비교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초경증이라는 또 하나의 키워드

앞서 본 KB 상품의 이름에는 초경증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가벼운 질환까지 보장 범위를 넓힌다는 뜻이다. 여기서 최근 상품 설계의 방향이 드러난다. 보장은 넓히고 심사는 조인다.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조합이다. 가벼운 질환까지 보장하면 청구 빈도가 올라가고, 올라간 빈도만큼 어딘가에서 위험을 걷어 내야 한다. 담보를 넓히면서 문턱까지 낮추면 상품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담보의 확장과 고지 기간의 연장이 한 상품 안에서 함께 나타난다.

이 조합을 읽지 못하면 상품을 잘못 평가한다. 문턱이 높아졌다는 사실만 보고 나빠졌다고 판단하거나, 보장이 넓어졌다는 사실만 보고 좋아졌다고 판단하는 것 모두 절반만 본 것이다. 두 변화는 하나의 설계에서 나온 짝이다.

공시는 이 복잡성을 따라오지 못한다

실무적으로 곤란한 점은 이 등급 체계가 표준화된 형식으로 공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상품은 상품명에 숫자를 넣고, 어떤 상품은 별지의 등급 표기로만 남기며, 어떤 상품은 회사 내부 등급명으로 적는다. 기계로 수집해 비교하려 해도 형식이 제각각이라 그대로는 정렬되지 않는다.

이는 소비자가 상품 비교 화면만으로는 이 차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보험료와 담보는 나란히 비교되는데, 그 보험료가 어느 문턱을 전제로 산출된 것인지는 표에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담보에 보험료가 30% 싼 상품을 발견했다면, 그것이 회사가 저렴해서인지 문턱이 높아서인지를 반드시 따로 확인해야 한다.

건강고지형이라는 중간 지대

앞서 본 삼성생명 상품에는 또 하나 눈여겨볼 표기가 있다. 1종에 붙은 건강고지형이라는 이름이다.

이 자리는 일반심사와 간편고지 사이의 중간 지대다. 건강한 사람임을 몇 개의 항목으로 확인받는 대신 보험료를 더 낮게 매기는 구조로, 우량체 할인과 발상이 닿아 있다. 결국 한 상품 안에 건강고지형, 문턱이 높은 간편심사형, 문턱이 낮은 간편심사형이 층으로 쌓이는 셈이다.

계약자 입장에서 이 배치는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이제 "나는 유병자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질문은 "내 이력은 이 사다리의 몇 번째 칸에 놓이는가"로 바뀐다. 그리고 그 칸은 시간이 지나면 위로 올라간다. 3년 전 수술이 4년 전 수술이 되고, 5년이 6년이 되면서 통과 가능한 등급이 하나씩 열리기 때문이다. 유병자보험에서 시간이 자산이라는 2화의 말은 등급이 세분화될수록 더 정확해진다.

이 흐름은 어디로 가는가

방향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유병자 시장이 하나의 덩어리에서 여러 층으로 쪼개지는 과정이다. 표준체 시장이 우량체와 표준체로 나뉘어 있듯, 유병자 시장도 이력의 결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각 등급이 자기 가격을 갖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유병자 시장의 표준체화라 부를 만한 현상이다. 유병자를 예외적 집단으로 취급하며 뭉뚱그려 비싸게 받던 시대가 끝나고, 그 안의 위험 차이를 정밀하게 재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정밀함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려면 조건이 하나 붙는다. 자신이 어느 층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것.

다음 화에서는 그 층 사이의 값 차이를 정면으로 다룬다. 고지 항목 한 칸은 보험료를 얼마나 움직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