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관문
상당인과관계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관문
상당인과관계 판례로 읽는 보험 23화
약관이 요구하는 인과관계
상해보험의 약관을 펼쳐보면, 보장의 대상을 정하는 문구에 거의 예외 없이 하나의 조건이 붙어 있다.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상해를 입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써' 사망하거나 후유장해가 남은 경우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여기서 '직접적인 원인' 또는 '직접적인 결과로써'라는 문구는, 사고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함을 요구하는 관문이다. 단순히 사고가 있었고 그 뒤에 죽음이나 장해가 뒤따랐다는 시간적 선후관계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사고가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실질적 연결이 있어야 보험금이 지급된다.
문제는 현실의 죽음과 장해가 좀처럼 단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신체 조건과 기왕의 질병을 지니고 살아가며, 하나의 사고는 여러 요인과 얽혀 결과에 이른다. 넘어져 다친 사람에게 원래 골다공증이 있었다면, 그 골절은 사고 때문인가 질병 때문인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가 치료 중 감염으로 사망했다면, 그 죽음의 원인은 사고인가 감염인가. 이처럼 여러 원인이 겹치는 복합원인 사안에서, 무엇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것인지가 인과관계 판단의 핵심이 된다.
상당인과관계라는 척도
법이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온 것은 '상당인과관계'라는 개념이다. 이는 어떤 원인이 있으면 통상적으로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리라고 인정되는 관계, 즉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 원인으로부터 그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평가되는 관계를 말한다. 단순히 그 원인이 없었다면 그 결과도 없었을 것이라는 조건적 관계(조건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조건들 중에서 결과 발생에 상당한 정도로 기여한 원인을 가려낸다는 것이 상당인과관계설의 취지다.
이 척도가 필요한 이유는, 조건적 관계만을 따진다면 인과의 사슬이 무한히 확장되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든 거슬러 올라가면 무수한 조건들이 관여하지만, 그 모두를 법적으로 의미 있는 원인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상당인과관계는 이 사슬 가운데 결과에 대해 사회통념상 상당한 기여를 한 원인을 추려냄으로써, 책임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획정하는 역할을 한다. 보험약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문언도, 대체로 이러한 상당인과관계의 존재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상당성의 판단은 획일적인 공식이 아니라 종합적인 평가다. 사고의 태양과 강도, 결과의 성질, 그 사이에 개입한 다른 요인의 성격과 정도, 그리고 그러한 경과가 일반적인 경험칙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것인지 등을 두루 살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 원인이 함께 작용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인과관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고가 결과에 이르는 여러 원인 중 하나였더라도, 그것이 결과에 대해 상당한 기여를 한 주된 원인으로 평가된다면 인과관계는 인정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상법 제655조가 담고 있는 취지를 함께 짚어둘 필요가 있다. 이 규정은 고지의무 위반 등이 있더라도 그 사실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때에는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지 못하도록 하여, 인과관계를 보험금 지급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처럼 인과관계는 계약의 성립 단계뿐 아니라 사고와 결과를 연결하는 지급 단계에서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며, 약관이 요구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문언 역시 이러한 인과관계의 사고 위에서 이해된다. 결국 보험금 분쟁의 많은 부분은 무엇을 원인으로 볼 것인가라는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복합원인의 세 가지 장면
상당인과관계가 실제로 문제되는 국면을 세 가지 장면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는 치료 과정에서 개입한 요인이다. 사고로 부상을 입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거나, 입원 치료 중 감염이 발생하여 사망하는 경우다. 언뜻 보면 죽음의 직접적 계기는 수술이나 감염이지만, 그 수술과 감염이 애초에 사고로 인한 부상을 치료하는 통상적인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사고와 죽음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 부상을 입으면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에는 일정한 위험이 따르며, 그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 통상적인 경과의 범위 안에 있다면, 최초의 사고가 여전히 상당한 원인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통상 예상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정이나 명백한 과오가 개입하여 결과를 초래했다면, 인과의 사슬이 끊어졌다고 평가될 여지가 생긴다.
둘째는 사고와 지병이 함께 작용한 경우다. 이는 이 시리즈에서 다룬 기왕증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사고로 인한 상해가 기존의 질병을 악화시켜 사망에 이른 경우, 죽음의 원인을 사고에 둘 것인지 지병에 둘 것인지가 다투어진다. 법원은 사고가 결과 발생에 어느 정도로 기여했는지를 심사하며, 사고가 없었더라도 지병의 자연스러운 경과만으로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것인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사고가 결과를 실질적으로 앞당기거나 중하게 만든 상당한 원인이라면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반대로 지병의 자연적 악화가 결과의 주된 원인이라면 인과관계가 부정되거나 기여도에 따른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는 사고 이후 시간이 흐른 뒤 결과가 발생한 경우다. 사고로 입은 상해의 후유증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어 장해나 사망에 이른 경우, 그 결과를 최초의 사고에 귀속시킬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시간적 간격이 크더라도 그 사이의 경과가 사고로 인한 상해의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설명된다면 인과관계는 인정될 수 있으나, 중간에 별개의 독립적인 원인이 개입하여 결과를 초래했다면 인과관계가 부정될 수 있다. 이러한 사안에서는 사고 직후의 상태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의학적 경과가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설명되는지, 아니면 어느 시점에서 새로운 원인이 끼어들어 흐름이 단절되었는지가 판단의 관건이 된다.
이러한 복합원인의 국면에서 인과관계가 전부 아니면 전무의 방식으로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고와 기왕의 질병이 함께 결과에 기여한 경우, 실무에서는 사고가 결과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하여 그에 상응하는 범위에서 보험금을 조정하는 방식이 활용되기도 한다. 이는 사고의 기여를 완전히 인정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실제로 사고가 결과에 미친 몫만큼의 보상을 실현하려는 접근이다. 다만 그 구체적인 처리는 약관의 문언과 담보의 성질, 그리고 사안의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입증과 균형, 그리고 판단의 신중함
인과관계는 누가 증명하는가. 원칙적으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측이 사고와 결과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다만 의학적 인과관계를 자연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법원은 여러 정황과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여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면 인과관계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증명의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왔다. 사고와 결과 사이의 시간적 근접성, 사고 이전의 건강 상태, 사고 이후의 경과에 대한 의학적 설명 등이 이러한 판단의 자료가 된다.
이 영역에서도 계약자와 보험사의 시각은 팽팽하게 맞선다. 계약자는 사고가 결과를 초래한 실질적 원인임을 강조하며 인과관계를 넓게 보려 하고, 보험사는 기왕증이나 치료상의 개입 등 다른 요인의 기여를 부각하여 인과의 사슬을 끊거나 기여도에 따라 책임을 제한하려 한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는 결국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의학적·사실적 자료에 달려 있으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라도 피보험자의 신체 조건과 경과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약관 해석의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짚어둘 만하다. '직접적인 원인' 또는 '직접적인 결과로써'라는 문언은 그 자체로 다의적이어서, 이를 얼마나 엄격하게 새기느냐에 따라 보장의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이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여 사고 외의 어떠한 요인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면, 기왕증을 가진 사람이나 치료 과정을 거친 사람은 사실상 보장에서 배제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긴다. 반대로 이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면, 사고와 무관하게 진행된 질병의 결과까지 상해보험이 떠안게 되어 담보의 성질에 반한다. 상당인과관계라는 척도는 이 양극단 사이에서 균형점을 제공하며, 문언이 애매한 경우에는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필요하다면 작성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는 원칙이 함께 작동한다.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관문은, 사고와 결과를 잇는 다리가 튼튼한지를 묻는 물음이다. 그 다리는 하나의 기둥으로만 지탱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여러 기둥이 함께 힘을 나눌 때 어느 것을 주된 기둥으로 볼 것인지가 다투어진다. 상당인과관계라는 척도는 이 판단에 방향을 제시하되, 최종적인 답은 언제나 그 사고와 그 죽음, 그 사람의 구체적인 사정 속에서 찾아진다.
지급 여부를 가르는 조항들은, 계약자가 그 존재와 의미를 제대로 안내받았을 때에만 온전히 효력을 갖는다. 설명되지 않은 조항은 어떤 운명을 맞는가. 보험자의 명시·설명의무를 다음 이야기에서 다룬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의 결론은 구체적 약관 문언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 분쟁은 손해사정사·변호사 또는 금융감독원(1332)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