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URANCE RESEARCH · 보험 판례

속인 계약을 무를 두 개의 길

사기취소와 고지의무의 경합

약 4분 읽기 · Updated 2026-07

속인 계약을 무를 두 개의 길

사기취소와 고지의무의 경합 판례로 읽는 보험 20화


고지의무 위반이라는 첫 번째 길

보험은 계약자가 자신의 위험에 관한 정보를 성실히 알린다는 신뢰 위에 서 있다. 보험사는 계약자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을 평가하고 인수 여부와 보험료를 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계약자가 보험사가 서면으로 질문한 중요한 사항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답하거나 이를 숨겼다면, 상법 제651조는 보험사에게 계약을 해지할 권리를 부여한다. 이것이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해지, 즉 속인 계약을 무르는 첫 번째 길이다.

그러나 이 길에는 명확한 시간의 제약이 있다. 상법은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날부터 일정 기간, 그리고 계약을 체결한 날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지권이 소멸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제척기간은 법률관계를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한 장치다. 계약이 오래 유지되어 왔다면, 설령 과거에 부실한 고지가 있었더라도 그 계약의 효력을 언제까지나 뒤흔들 수는 없다는 취지다. 또한 상법 제655조 및 관련 법리에 따라,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해지권의 행사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고지의무 위반 해지가 이처럼 여러 제약 아래 놓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고지의무는 계약자에게 자신의 위험을 성실히 알릴 것을 요구하되, 그 위반에 대해서는 상법이 정한 요건과 한계 안에서만 제재를 가함으로써, 계약자를 지나치게 불안정한 지위에 두지 않으려는 균형을 담고 있다. 사소한 부주의나 뒤늦게 발견된 과거의 흠결로 인해 오랜 기간 유지된 계약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면, 계약자는 자신이 확보한 보장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제척기간과 인과관계 항변은 바로 이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계약자가 단순히 부주의하게 고지를 빠뜨린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실을 조작하고 보험사를 속여 계약을 체결했는데, 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이미 제척기간이 지나버린 경우다.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척기간이, 도리어 적극적으로 속인 계약자를 보호하는 방패로 작동하는 역설이 생기는 것이다. 상법상 해지의 길이 막혔다고 해서, 보험사는 그 계약을 그대로 감수해야만 하는가. 여기서 두 번째 길이 등장한다.

사기취소라는 두 번째 길

민법 제110조는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정한다. 타인의 기망행위로 인해 착오에 빠져 의사표시를 한 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계약도 하나의 법률행위이므로, 계약자의 기망으로 인해 보험사가 계약 체결이라는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 보험사는 민법의 일반 규정에 따라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핵심 쟁점은 상법이 고지의무 위반에 관한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민법의 사기취소를 별도로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별법인 상법이 우선 적용되므로 민법의 적용은 배제된다는 견해도 상정할 수 있으나, 판례는 양자의 경합을 인정하는 취지로 이해되어 왔다. 즉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해지권과 사기를 이유로 한 취소권은 요건과 효과를 달리하는 별개의 권리이며, 계약자의 행위가 사기의 요건을 충족한다면 보험사는 상법상 해지권의 제척기간이 지났더라도 민법상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합 인정의 실천적 의미는 분명하다. 사기취소의 취소권은 상법의 짧은 제척기간이 아니라 민법 제110조 및 취소권에 관한 일반 규정의 기간에 따르므로, 보험사에게는 시간의 벽을 넘어설 여지가 열린다. 또한 취소의 효과는 계약을 소급하여 무효로 만드는 것이어서, 장래를 향해 계약을 끊는 해지와는 그 파장이 다르다. 이미 지급한 보험금이 있다면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구할 수 있고, 아직 지급하지 않았다면 지급 의무 자체가 소멸한다.

두 권리의 효과가 이처럼 다르다는 점은 실무에서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해지는 그 효력이 장래에 미치므로 해지 이전에 이미 발생한 사고에 관해서는 원칙적으로 계약의 효력이 유지될 수 있는 반면, 취소는 계약을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므로 그 계약에 기초해 이루어진 급부 전체가 청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보험사가 어떤 무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반환의 범위와 계산이 달라진다. 물론 이는 보험사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뜻하지 않는다. 취소를 주장하려면 해지보다 훨씬 무거운 기망의 요건을 증명해야 하므로, 시간의 벽을 넘어서는 대가로 더 높은 입증의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두 길은 각각 요건의 무게와 효과의 범위가 맞물려 있어, 어느 쪽이 언제나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고지의무 위반이 곧 사기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경계가 있다. 모든 고지의무 위반이 사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부실고지가 있기만 하면 언제나 사기취소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상법이 애써 제척기간을 두어 법률관계를 안정시키려 한 취지가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사기취소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고지의무 위반의 요건을 넘어서는 별도의 엄격한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기망의 고의가 필요하다. 계약자가 자신이 알리지 않은 사실이 중요한 사항임을 인식하고, 이를 숨기거나 허위로 답함으로써 보험사를 착오에 빠뜨리려는 적극적인 의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잊었거나, 중요성을 몰랐거나, 부주의하게 답을 빠뜨린 정도로는 부족하다. 다음으로 기망행위의 위법성이 요구된다.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속였다는 평가가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망과 보험사의 계약 체결이라는 의사표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즉 그러한 기망이 없었다면 보험사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다른 조건으로 체결했을 것이라는 관계다.

특히 자주 문제되는 것은 침묵, 즉 사실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은 부작위가 기망에 해당하는지다. 계약자가 보험사의 질문에 대해 허위의 답변을 꾸며낸 경우라면 적극적 기망을 인정하기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단지 불리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침묵한 경우에는 그 침묵이 사회통념상 고지할 의무가 있는 사항에 관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를 별도로 따져야 한다. 모든 침묵이 기망이 되는 것은 아니며,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을 알면서도 이를 숨겨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리려 한 경우에 비로소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 문제될 수 있다.

판례가 이처럼 사기의 요건을 엄격히 새기는 이유는, 두 제도가 각자의 자리를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다. 통상의 부실고지는 상법의 틀 안에서 해지로 다루어지고, 그 안에는 인과관계 항변이나 제척기간과 같은 계약자 보호 장치가 작동한다. 반면 계약자가 처음부터 보험사를 속이겠다는 뚜렷한 의도로 사실을 조작한, 질적으로 다른 사안에 한하여 민법의 사기취소가 열린다. 결국 사기취소는 예외적이고 무거운 경우에 적용되는 길이며, 이를 주장하는 보험사는 기망의 고의와 위법성이라는 높은 문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실무의 긴장, 그리고 보험사기와의 경계

이 두 갈래의 길은 실무에서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계약자 측에서 보면, 이미 여러 해 유지되어 온 계약이 사기취소라는 이름으로 소급하여 무너지는 것은 큰 충격이다. 그래서 계약자는 자신의 고지 누락이 고의가 아니라 착오나 부주의였음을, 혹은 숨겼다는 사항이 계약 인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음을 다투게 된다. 보험사 측에서 보면, 명백히 속고 인수한 위험을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형식적 이유만으로 감수하는 것은 선의의 다른 가입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가 되므로, 사기취소는 정당한 방어수단이 된다.

또한 이 논의는 보험사기와의 경계에 맞닿아 있다. 계약 체결 단계에서의 적극적 기망은 민사상 사기취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안에 따라 보험사기 관련 법령이 정하는 형사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형사적 처벌과 민사상 계약의 효력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형사 결과가 곧바로 민사 결론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는 어디까지나 민법 제110조의 요건이 충족되었는지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이 쟁점은 앞선 이야기에서 다룬 부정취득 목적의 다수보험 문제와도 이어진다. 그 경우 보험사는 계약이 민법 제103조에 반하여 무효라는 구성을 취할 수 있는데, 이는 계약자의 개별적 기망을 증명하는 사기취소와는 또 다른 접근이다. 사기취소가 '속인 개별 계약'을 겨냥한다면, 반사회질서 무효는 '보험제도 자체를 남용하려는 계약의 총체'를 겨냥한다. 실무에서 보험사는 사안의 성격에 따라 고지의무 위반 해지, 사기취소, 반사회질서 무효라는 여러 구성을 선택적으로 또는 함께 주장하기도 한다. 어느 구성이 받아들여질지는 결국 계약자의 행위가 어떤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달려 있으며, 각 구성은 저마다 다른 입증의 관문을 요구한다.

결국 이 쟁점의 핵심은 균형이다. 성실한 신뢰 위에 선 보험제도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속인 계약은 무를 수 있어야 하지만, 그 무기가 남용되어 통상의 고지 분쟁까지 사기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속인 계약을 무를 두 개의 길은 나란히 존재하되, 각자의 요건이라는 문을 통과한 자에게만 열린다.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했더라도, 지급 여부는 다시 약관의 문언에 달려 있다. 무엇이 '재해'에 해당하는가. 우발적이고 외래적인 사고를 정의하는 재해분류표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의 결론은 구체적 약관 문언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 분쟁은 손해사정사·변호사 또는 금융감독원(1332)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