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면책약관의 효력
취했다는 이유로 보장을 잃는가
음주운전 면책약관의 효력
취했다는 이유로 보장을 잃는가 판례로 읽는 보험 3화
위법과 면책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음주운전은 우리 사회가 가장 강하게 비난하는 위법행위의 하나다. 그러니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는 약관은, 언뜻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의로워 보인다. 실제로 많은 보험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음주운전을 하던 중 발생한 사고'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로 정한 조항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러나 보험법은 여기서 하나의 냉정한 구별을 요구한다.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법적으로 처벌된다는 사실과, 그 행위로 인한 사고를 보험이 면책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형벌은 형벌이고, 보험은 보험이다. 음주운전자를 형사처벌하고 행정제재를 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가입한 상해보험이 그 사고를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지는 보험계약과 보험법의 논리로 따로 판단해야 한다. 이 구별을 놓치면, '나쁜 사람이니 보험금도 못 받는 게 마땅하다'는 감정이 법리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핵심은 보험의 종류에 있다. 음주운전 면책조항의 운명은 그것이 인보험에 붙어 있느냐, 배상책임보험에 붙어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 구별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먼저 두 보험의 성격을 짚어 두자. 인보험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생긴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으로, 상해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의 자기신체사고 담보가 여기에 속한다. 여기서 보호받는 것은 사고를 당한 피보험자 자신이다. 반면 배상책임보험은 피보험자가 타인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대신 이행해 주는 보험으로, 자동차보험의 대인배상과 대물배상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궁극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피해자다. 이처럼 '누구를 보호하는 보험인가'라는 근본적 차이가, 음주운전이라는 동일한 사정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게 만드는 뿌리가 된다.
인보험과 고의만의 면책
먼저 인보험, 즉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보험의 대상으로 하는 상해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의 자기신체사고 담보를 보자. 이들은 피보험자 자신이 다치거나 사망한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여기에 적용되는 강행규정이 상법 제659조와 제663조다.
상법 제659조는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생긴 때 보험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정한다. 그런데 인보험에는 이보다 계약자에게 더 유리한 특칙이 있다. 상법 제732조의2는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에서 중대한 과실로 사고가 생긴 경우에도 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여, 인보험에서는 사실상 '고의'만을 면책 사유로 좁혀 놓았다. 그리고 상법 제663조는 이런 규정들을 계약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못박는다. 이것이 보험계약자 등의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다.
이 틀에 음주운전을 대입해 보자.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은 사고의 위험을 크게 높이는 무모한 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그가 사고와 그로 인한 자신의 부상·사망이라는 결과까지 의욕하거나 용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주운전 사고는 전형적으로 '고의'가 아니라 '중대한 과실'의 영역에 속하며, 사고 자체의 우연성 또한 그대로 남아 있다. 취한 채 운전대를 잡았다고 해서 그 다음에 벌어질 충돌이 예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의와 중과실의 경계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법적 의미의 고의는 결과에 대한 인식과 의욕을 요구한다. 즉 자신의 행위가 부상이나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 결과를 원하거나 적어도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다. 반면 중대한 과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결과를 피할 수 있었는데도 그 주의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를 말한다. 음주운전은 바로 이 중대한 과실의 전형이다. 운전자는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운전에 나섰지만, 그 자신이 다치거나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음주운전 사고는 인보험의 강행규정 체계 안에서 '고의'가 아닌 '중과실'로 분류되고, 그 결과 일률적 면책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도로교통법이 음주운전을 강하게 처벌하는 것과, 그 사고가 보험법상 고의인지 여부는 서로 다른 평면의 문제라는 점이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그렇다면 음주운전 사고까지 일률적으로 면책하는 약관은, 중대한 과실로 인한 사고는 보장하도록 정한 상법의 취지를 계약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이 된다. 대법원은 이런 취지에서, 인보험에서 음주운전 중의 사고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전면 배제하는 면책약관은 상법 제659조와 제663조에 반하여 무효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려 왔다. 결론적으로 상해보험이나 자기신체사고 담보에서는, 음주운전 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금을 잃지 않는 경우가 많다. '취했다는 이유로 보장을 잃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인보험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하는 것이다.
배상책임보험과 사고부담금
그러나 같은 음주운전이라도 배상책임보험으로 무대를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동차보험의 대인배상과 대물배상은 피보험자가 다친 것이 아니라, 피보험자가 남에게 입힌 손해를 대신 배상해 주는 책임보험이다. 여기서 보호의 초점은 가해 운전자가 아니라, 아무 잘못 없이 피해를 입은 제3자에게 있다.
이 영역에서 음주운전을 완전히 면책해 버리면 엉뚱한 결과가 생긴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가해자의 음주라는 사정 때문에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도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음주운전 사고라도 피해자에 대한 보험사의 보상은 이루어지되, 그로 인해 보험사가 부담한 금액의 상당 부분을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 본인에게 되돌려 물리는 사고부담금 제도가 그것이다. 피해자 구제는 유지하면서, 위법행위를 한 운전자에게는 경제적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절충인 셈이다. 이 사고부담금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점차 상향되어 왔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제도에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구조가 시사하는 바는 흥미롭다. 배상책임보험에서 음주운전은 '면책'이 아니라 '자기부담'의 문제로 전환된다. 즉 보험의 보호가 완전히 끊기는 것이 아니라, 그 보호의 비용을 궁극적으로 누가 지느냐의 문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피해자는 일단 온전히 보상받고, 그 대가는 사고부담금이라는 형태로 가해 운전자에게 청구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도는 피해자 보호라는 책임보험의 본령과 음주운전에 대한 응보라는 사회적 요청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인보험이 피보험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면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배상책임보험은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해 면책 대신 부담 전가라는 다른 도구를 택한 셈이다. 같은 음주운전이라는 사실 하나가, 보호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이토록 다른 법적 처리를 받는다는 점이 이 주제의 묘미다.
두 논리를 갈라 읽는 실무의 눈
정리하면 이렇다. 음주운전 면책조항은 어디에 붙어 있느냐에 따라 효력이 갈린다. 피보험자 자신의 신체 손해를 다루는 인보험에서는, 음주운전이 대개 고의가 아닌 중과실에 그치고 사고의 우연성이 남아 있으므로, 이를 일률 면책하는 약관은 강행규정 위반으로 힘을 잃을 수 있다. 반면 제3자 보호가 핵심인 배상책임보험에서는, 면책이 아니라 사고부담금이라는 방식으로 위법행위의 책임을 묻는다.
이 구별은 단순한 이론 놀음이 아니다. 음주운전 사고를 당한 계약자나 유족이 상해보험·자기신체사고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보험사가 음주 면책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더라도 그 거절이 법적으로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오해를 경계할 지점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인보험에서 음주 면책약관의 효력이 제한된다는 것이, 음주운전이 아무런 불이익 없이 온전히 보장된다는 뜻은 아니다. 개별 약관의 구조에 따라 음주운전이 별도의 감액 사유나 부담금의 근거가 될 수 있고, 사고의 구체적 경위에 따라 음주가 사고에 기여한 정도가 따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여기서 다룬 것은 어디까지나 '음주운전 중 사고를 일률적으로 전부 면책하는' 약관의 효력 문제이지, 음주와 관련된 모든 조항이 무효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컨대 결론은 '음주라고 무조건 면책'도 아니고 '음주라도 무조건 전액 보장'도 아니며, 그 사이에서 강행규정의 취지에 맞게 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음주 자체가 사고 발생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다른 감액 사유는 없는지 등은 개별적으로 따져야 하고, 약관과 상품 구조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출발점은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음주운전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위법이지만, 위법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인보험의 면책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도덕적 비난과 보험법의 논리를 분리해 읽는 이 냉정함이야말로,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이 주제에서 실무가 지켜야 할 태도다.
다음 화에서는 무면허운전 면책을 다룬다. 무면허라는 사정만으로 언제나 보장이 배제되는지, 판례가 이 면책을 '피보험자가 지배·관리할 수 있는 상황'으로 어떻게 한정해 왔는지를 살핀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의 결론은 구체적 약관 문언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 분쟁은 손해사정사·변호사 또는 금융감독원(1332)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