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언더라이팅
건강검진 데이터는 어떻게 위험이 되는가
숫자 하나가 등급을 가른다 — 혈압 140이 130과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
5화까지가 언더라이팅의 원리와 그 판단자의 심리를 다뤘다면, 이제부터는 그 판단이 실제로 무엇을 재료로 작동하는지를 본다. 가장 큰 재료는 몸이다. 의적 언더라이팅(medical underwriting)은 건강검진 결과, 병력, 가족력을 계량화된 위험 신호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이 번역의 핵심 도구가 미국 보험계리 실무에서 정립된 "빌드 차트(build chart)"와 "혈액·소변 검사 기준표"다. 빌드 차트는 키와 체중의 조합만으로 사망률 배수를 산출한다 — 같은 표준 체중이어도 168cm에 90kg인 사람과 180cm에 90kg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위험 배수를 받는다. 이 표는 개인의 건강 상태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과거 사망 데이터에서 역산된 순수한 통계적 산출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 언더라이터는 이 사람이 왜 그 체중인지 묻지 않는다. 오직 체중이라는 숫자와 사망률의 상관관계만 본다.
혈액검사 항목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혈압, 공복혈당, 콜레스테롤, 간 수치(GGT)다. 이 네 항목이 언더라이팅에서 특별 취급되는 이유는 각각 심혈관질환, 당뇨, 대사증후군, 과음이라는 만성질환의 "선행 지표"이기 때문이다. 미국 언더라이팅 매뉴얼은 혈압을 수축기 기준 10mmHg 단위로 등급을 나누는데, 130 미만은 표준, 140을 넘으면 표준미달체로 분류되는 식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 등급 경계선이 의학적 진단 기준(고혈압 진단은 통상 140/90 이상)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더라이팅의 경계선은 "질병이 있는가"가 아니라 "장기 사망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갈리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기준으로 그어진다. 즉 의사가 보는 정상·비정상의 경계와 언더라이터가 보는 저위험·고위험의 경계는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가족력은 의적 언더라이팅에서 가장 논쟁적인 항목이다. 부모나 형제자매가 특정 연령 이전에 암, 심장질환, 뇌졸중으로 사망했거나 진단받았는지를 묻는데, 이는 신청자 본인의 건강 상태가 아니라 유전적 소인을 추정하는 대리 지표다. 문제는 이 대리 지표의 예측력이 질환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유방암, 대장암처럼 가족력과 특정 유전자 변이의 연관성이 임상적으로 잘 규명된 질환은 가족력 질문이 합리적 근거를 갖지만, 연관성이 약한 질환까지 뭉뚱그려 같은 방식으로 할증하면 신청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부모의 병력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셈이 된다. 이 지점이 16화에서 다룰 유전자 정보 언더라이팅 규제 논쟁과 직결된다 — 가족력이라는 "느슨한 유전 정보"는 허용하면서, 유전자 검사라는 "정밀한 유전 정보"는 왜 미국과 유럽이 법으로 금지하는지의 경계선이 여기서 시작된다.
한국 보험사의 실무에서는 여기에 하나의 층이 더 추가된다 — 건강검진 결과지를 제출받는 대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이력을 신청자 동의하에 조회하는 방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신청자가 유리한 검진 결과만 골라 제출하는 "체리피킹"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신청자가 몰랐던 과거 이상 소견까지 자동으로 노출시켜 예상치 못한 할증이나 거절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검진 데이터의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언더라이팅의 정밀도는 올라가지만, 그만큼 신청자 개인이 자신의 등급을 미리 예측하기는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생긴다. 다음 화에서는 몸이 아니라 지갑을 들여다보는 심사, 즉 재정 언더라이팅 — 보험금이 왜 소득의 몇 배로 제한되는지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