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숫자를 골라야 하는가
이력을 좌표로 바꾸는 판정 순서도
나는 어느 숫자를 골라야 하는가
이력을 좌표로 바꾸는 판정 순서도 | 유병자보험의 숫자 10화
앞의 아홉 화를 한 장으로 압축하면 이렇게 된다. 세 자리 숫자는 문턱이고, 문턱은 위에서 아래로 사다리처럼 놓여 있으며, 자신이 통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칸이 가장 싼 자리다. 이번 화는 그 사다리를 실제로 오르내리는 절차다.
0단계 — 날짜를 적는다
모든 판정은 세 개의 날짜에서 시작한다. 종이 한 장에 다음을 적는다.
첫째, 최근 3개월 안에 병원에서 추가검사·재검사·입원·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는가. 들었다면 그 날짜. 둘째, 가장 최근에 입원했거나 수술받은 날짜. 셋째, 암·협심증·심근경색·심장판막증·간경화·뇌졸중·투석 중인 만성신장질환으로 진단·입원·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 날짜.
기억이 흐리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 내역과 검진 결과를 확인한다. 이 세 줄이 정확해지는 순간 나머지는 기계적인 대입이다.
1단계 — 일반심사부터 두드린다
가장 흔한 실수가 이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다. 지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장 유병자 상품으로 가면 필요 이상의 값을 평생 치른다.
투약으로 관리 중인 만성질환은 있지만 최근 5년간 입원·수술이 없고 중대질병 이력도 없다면, 일반심사에서 부담보나 소폭 할증 조건으로 인수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조건부 승인은 거절이 아니라 제안이며, 받아들일지는 본인이 결정한다. 한 번의 청약과 며칠의 기다림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선택지를 미리 포기할 이유가 없다.
2단계 — 병원비 층을 먼저 세운다
정액 담보보다 먼저 확인할 것은 실비 층이다. 일반 실손이 열려 있으면 그것이 최선이고, 닫혀 있다면 유병력자 실손을 확인한다. 5화에서 본 대로 이 상품은 투약 이력을 묻지 않으므로, 약으로 관리 중인 만성질환자에게 문이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
순서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위험의 성격 때문이다. 유병자에게 실제로 반복되는 지출은 큰 병 한 번이 아니라 매년 이어지는 통원과 검사다. 진단비만 두껍게 쌓은 증권은 그 반복 앞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3단계 — 간편고지 사다리를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이제 정액 담보 차례다. 사다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놓여 있다.
| 표기 | 가운데 자리가 묻는 기간 | 통과하는 사람 | 상대적 보험료 |
|---|---|---|---|
| 3·10·5 | 최근 10년 입원·수술 | 약은 먹지만 10년간 사건이 없던 사람 | 가장 낮음 |
| 3·5·5 | 최근 5년 입원·수술 | 5년 이상 사건이 없던 사람 | 낮음 |
| 3·2·5 | 최근 2년 입원·수술 | 2년 이상 사건이 없던 사람 | 보통 |
| 3·1·5 | 최근 1년 입원·수술 | 1년 이상 사건이 없던 사람 | 높음 |
| 무심사 | 묻지 않음 | 위 조건에 모두 걸리는 사람 | 가장 높음 |
첫 자리 3개월과 마지막 자리 5년은 거의 모든 등급에 공통이므로, 실제로 갈리는 것은 가운데 한 자리다. 0단계에서 적은 두 번째 날짜를 오늘 기준으로 계산해 통과 가능한 가장 높은 칸을 찾으면 된다.
주의할 점은 이 표가 지도일 뿐 계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3·2·5 라도 회사마다 수술의 정의, 중대질병 목록, 감액기간이 다르다. 최종 판정은 언제나 그 상품의 청약서 문언으로 한다.
4단계 — 무심사는 마지막 칸이다
세 질문 모두에 걸린다면 무심사 계열이 남는다. 다만 이 칸에 설 때는 세 가지를 각오해야 한다. 보험료가 가장 비싸고, 가입금액 한도가 낮으며, 초기 몇 년의 질병 보장이 감액되거나 제외된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목표를 바꾸는 편이 낫다. 큰 진단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 대신, 병원비 보상과 이미 보유한 계약의 유지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 둔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
유병자보험에서 시간은 자산이다. 22개월 전 수술을 받은 사람이 두 달을 기다리면 3·2·5 가 열리고, 4년 반 전 수술이라면 여섯 달 뒤 3·5·5 가 열린다. 그 사이의 보험료 차이는 20년 납입 기준으로 수백만 원 단위가 된다.
물론 기다림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 사이 새로운 사건이 생기면 오히려 문턱이 올라가고, 나이가 오르면 보험료도 오른다. 그래서 판단 기준은 단순하다. 두어 달 안에 문이 열린다면 기다린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면 지금 열려 있는 칸에서 시작하고, 시간이 지난 뒤 상위 칸으로 옮길지를 그때 다시 판단한다.
세 가지 이력, 세 가지 경로
같은 유병자라도 이력의 결에 따라 답이 갈린다. 자주 만나는 세 유형을 놓고 보면 순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명해진다.
약만 먹는 사람. 고혈압·고지혈증·당뇨를 10년 넘게 약으로 관리해 왔고 입원과 수술 이력은 없다. 이 사람은 사실 사다리의 꼭대기에 있다. 일반심사도 시도해 볼 만하고, 유병력자 실손이 열려 있으며, 정액 담보는 3·10·5 나 3·5·5 처럼 문턱이 높고 저렴한 등급부터 두드리면 된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상담 창구에서 곧장 3·2·5 를 권유받는 일이 흔하다. 이 시리즈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비용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유형이다.
최근 사건이 있는 사람. 1년 전 담낭 수술, 8개월 전 디스크 수술처럼 가까운 과거에 사건이 있다. 가운데 자리가 문제이므로 3·1·5 계열이 현실적인 출발점이고, 동시에 달력을 본다. 그 사건이 2년을 넘기는 날짜에 3·2·5 가 열리고, 5년을 넘기면 다시 위 칸이 열린다. 지금 가입하되 몇 년 뒤 상위 등급으로 옮길 여지를 남겨 두는 설계가 맞는다.
중대질병 이력자. 5년 안에 암이나 뇌졸중, 심근경색을 겪었다면 마지막 자리에서 걸린다. 이 자리는 시장이 거의 움직이지 않은 곳이라 완화 경쟁의 혜택도 닿지 않았다. 여기서는 목돈 담보를 무리하게 추구하는 대신 실비 계열과 기존 계약 유지에 집중하고, 진단일로부터 5년이 지나는 시점을 기다리는 것이 정공법이다. 그 5년은 의학적으로도, 인수 기준에서도 하나의 분기점이다.
상담에서 반드시 물어야 할 다섯 문장
판매자와 마주 앉았을 때 이 다섯 개를 물으면 대화의 성격이 달라진다.
첫째, 제 이력으로 통과 가능한 가장 높은 고지 등급은 무엇입니까. 둘째, 그 등급과 한 칸 아래 등급의 보험료를 나란히 보여 주십시오. 셋째, 감액기간은 몇 년이고 그 기간의 지급률은 얼마입니까. 넷째, 이 담보의 가입금액 한도와 갱신 주기는 어떻게 됩니까. 다섯째, 제가 일반심사나 유병력자 실손으로 갈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 주셨습니까.
다섯 번째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7화에서 본 대로 등급 선택의 유인은 판매자와 계약자 사이에서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계약한 뒤에 할 일
서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 가지를 남겨 둔다.
감액기간이 끝나는 날짜를 달력에 적는다. 그날 이전과 이후는 같은 계약이 아니다. 갱신형 담보가 있다면 갱신 시점과 예상 인상 폭을 확인해 둔다. 그리고 청약서에 어떻게 답했는지의 사본을 보관한다. 몇 년 뒤 조사가 들어올 때, 자신이 무엇을 알렸는지를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결과는 다르다.
이 시리즈가 남기는 세 문장
첫째, 세 자리 숫자는 보장이 아니라 문턱이다. 숫자가 클수록 문턱이 높고 보험료는 싸다. 그러므로 통과 가능한 가장 높은 칸이 정답이다.
둘째, 열어 준 곳이 있으면 반드시 조인 곳이 있다. 문턱이 낮은 상품일수록 보험료·감액·가입한도 어딘가에서 값을 회수한다. 숫자만 보고 상품을 비교하는 것은 절반만 읽는 일이다.
셋째, 유병자보험에서 가장 확실한 방어는 청약서 앞에서의 정직이다. 묻지 않은 것은 알릴 의무가 없고, 묻는 것에는 사실대로 답한다. 그 결과 거절된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칸으로 이동하라는 신호다.
마지막으로
10년 전이라면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았을 사람들이 지금은 사다리 위 어딘가에 자기 자리를 갖는다. 거절의 시대에서 등급의 시대로 오는 데 20년이 걸렸고, 그 여정이 세 자리 숫자에 압축되어 있다.
그러나 사다리가 있다는 사실과 자기 자리를 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유병자 시장에서 정보 격차가 유독 비싼 값을 갖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시리즈가 하려 한 일은 단 하나다. 증권에 적힌 그 세 자리 숫자를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읽을 수 있으면 고를 수 있고, 고를 수 있으면 값을 치르는 쪽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