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은 어떻게 조절되나
먹지 않아도 혈당이 유지되는 이유부터
혈당은 어떻게 조절되나
먹지 않아도 혈당이 유지되는 이유부터 | 건강 설계 200 14화
몸이 지키려는 것
혈액 속 포도당의 총량은 생각보다 적다. 성인 혈액 전체에 들어 있는 포도당은 대략 티스푼 몇 개 분량이다. 그런데 뇌는 포도당을 대량으로 쓰고, 적혈구는 포도당 외에는 쓰지 못한다.
그래서 몸은 혈당을 아주 좁은 범위 안에 유지한다. 며칠을 굶어도 혈당이 바닥나지 않는다. 이것은 저장해 둔 것을 꺼내 쓰고, 부족하면 새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조절 구조를 먼저 알아야 이후의 이야기가 성립한다. 당뇨는 "단 것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이 조절 체계가 무너지는 병이기 때문이다.
올리는 쪽과 내리는 쪽
혈당을 내리는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다. 반면 올리는 호르몬은 여럿이다. 글루카곤, 코르티솔, 에피네프린, 성장호르몬.
이 비대칭은 진화의 흔적이다. 인류의 역사 대부분에서 위험한 것은 고혈당이 아니라 저혈당이었다. 굶주림에서 살아남는 쪽으로 설계된 몸이 잉여의 시대에 놓인 것이 현대 대사질환의 배경이다.
실용적 함의가 있다. 스트레스는 혈당을 올린다.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은 "지금 도망쳐야 하니 연료를 풀어라"라는 신호다. 잠을 못 자거나(82화) 스트레스가 심하면(93화) 아무것도 안 먹어도 아침 혈당이 오른다.
식사 후에 일어나는 일
탄수화물을 먹으면 소화되어 포도당으로 흡수된다. 혈당이 오르고, 췌장의 베타세포가 이를 감지해 인슐린을 낸다.
인슐린 분비에는 두 단계가 있다.
- 1상 분비 — 이미 만들어 저장해 둔 인슐린을 빠르게 방출한다. 식후 수 분 내.
- 2상 분비 — 새로 만들어 지속적으로 낸다.
1상 분비의 소실이 제2형 당뇨의 이른 신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초기 방출이 무뎌지면 식후 혈당이 높이 오래 머문다. 공복혈당이 아직 정상인 사람에게서도 이 변화가 먼저 보이는 경우가 있고, 그래서 경구당부하검사가 더 이른 이상을 잡아낸다(17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장에서 나오는 인크레틴 호르몬이다. 음식이 장을 지나가면 장 세포가 이 호르몬을 내고, 이것이 인슐린 분비를 증폭한다. 같은 양의 포도당이라도 정맥으로 주입할 때보다 먹었을 때 인슐린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다. 이 경로를 이용한 약이 27화에서 다룰 GLP-1 계열이다.
먹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
식후 몇 시간이 지나면 인슐린이 내려가고 글루카곤이 올라간다. 그러면 간이 두 가지 일을 한다.
- 글리코겐 분해 — 저장해 둔 포도당을 꺼낸다. 간의 글리코겐은 대략 하루가 안 되는 분량이다.
- 당신생 — 젖산, 아미노산, 글리세롤에서 포도당을 새로 만든다. 이 능력 때문에 며칠을 굶어도 혈당이 유지된다.
동시에 지방 분해가 풀린다. 지방산이 나와 근육과 간의 연료가 되고, 간은 이것으로 케톤체를 만든다. 케톤은 뇌가 쓸 수 있는 대체 연료다. 몸은 포도당 연료와 지방 연료 사이를 오가도록 설계돼 있다.
이 전환 능력을 대사 유연성이라 부른다. 인슐린 저항성이 있으면 이 전환이 무뎌진다. 인슐린이 늘 높아 지방을 못 태우고, 그렇다고 포도당도 잘 못 쓰는 상태가 된다.
근육이라는 두 번째 통로
포도당이 근육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개다. 하나는 인슐린이 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근육 수축 자체가 여는 길이다. 두 번째 경로는 인슐린과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이것이 운동의 대사 효과를 설명하는 핵심 기전 중 하나다. 인슐린 저항성이 있어도 근육을 쓰면 포도당이 들어간다. 식후 산책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즉각적인 이유이고, 운동이 당뇨 예방·관리의 1차 수단인 이유다(53·76화).
근육량 자체도 중요하다. 근육은 포도당을 저장하는 가장 큰 창고다. 창고가 작으면 같은 식사에도 혈당이 더 오래 높이 머문다. 나이가 들며 근육이 줄면 대사가 나빠지는 것은 이 구조 때문이고, 그래서 9부에서 근감소증을 노화의 중심 문제로 다룬다(151화).
진단 기준의 의미
혈당 이상은 세 가지 방식으로 판정한다. 기준값은 학회와 시점에 따라 조정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무엇을 재는지를 중심으로 적는다.
- 공복혈당 — 8시간 이상 금식 후. 간이 밤새 포도당을 얼마나 내보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억제되는지를 본다.
- 당화혈색소 — 최근 2~3개월 평균 혈당의 대리 지표(16화)
- 경구당부하검사 — 정해진 양의 포도당을 마시고 2시간 뒤를 본다. 식후 처리 능력을 직접 본다(17화)
세 검사는 서로 다른 것을 본다. 그래서 한 검사는 정상인데 다른 검사는 이상인 경우가 흔하다. 흔한 순서는 이렇다 — 식후 혈당이 먼저 나빠지고, 그 다음 당화혈색소가 오르고, 공복혈당이 마지막에 오른다. 공복혈당만 보는 검진에서 초기 이상이 자주 놓치는 이유다.
제1형과 제2형은 다른 병이다
같은 "당뇨"라는 이름을 쓰지만 기전이 다르다.
- 제1형 — 자가면역으로 베타세포가 파괴되어 인슐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슐린 투여가 생존에 필수다. 대개 젊은 나이에 시작하지만 성인에게도 온다.
- 제2형 — 저항성이 먼저 오고, 이를 보상하던 베타세포가 지쳐 분비능이 떨어지면서 발현한다. 진행성이다.
두 병의 생활습관 조언을 섞어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제1형에게 "식습관을 고치면 인슐린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고 해롭다. 이 시리즈에서 대사 부의 내용은 별도 언급이 없으면 제2형과 그 전 단계를 다룬다.
이 외에도 임신성 당뇨(174화), 성인에게 서서히 오는 자가면역형, 유전자 하나로 생기는 형태 등이 있다. 젊고 마른 사람에게 당뇨가 왔다면 제2형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감별이 필요하다.
이 화가 뒤에서 쓰이는 자리
혈당 조절의 구조를 잡아 두면 뒤의 여러 화가 짧아진다.
- 왜 아침 공복혈당이 밤사이 오르는가 → 간의 당신생과 새벽 호르몬(16화)
- 왜 식후 걷기가 즉각 효과가 있는가 → 수축 유도 경로(65화)
- 왜 수면 부족이 하루 만에 혈당을 바꾸는가 → 스트레스 호르몬과 인슐린 감수성(82화)
- 왜 같은 음식도 순서에 따라 혈당 곡선이 다른가 → 위 배출 속도와 인크레틴(46화)
혈당계가 보여주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측정에 관한 주의를 하나 적는다. 손끝 채혈로 재는 혈당은 그 순간의 값이고, 몸의 혈당은 하루 종일 오르내린다. 같은 사람이 같은 날 여러 번 재면 값이 상당히 흔들린다.
그래서 한 번의 측정값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진단은 반복 측정이나 다른 검사와의 조합으로 한다. 반대로 여러 번 재도 계속 높으면 그것은 흔들림이 아니라 신호다.
또 하나. 채혈 방식과 검체에 따라 값이 다르다. 정맥 혈장으로 측정한 값과 손끝 모세혈 측정값은 기준이 다르고, 자가 혈당계는 일정 범위의 오차를 허용한 기기다. 자가 측정 기기의 숫자를 진단 기준에 그대로 대입하면 안 된다. 자가 측정의 쓸모는 진단이 아니라 추세와 반응을 보는 데 있다(21화).
정리
- 핵심 — 혈당은 인슐린 하나가 내리고 여러 호르몬이 올리는 비대칭 구조로 유지된다. 근육으로 가는 포도당 통로는 인슐린 경로 말고 수축 경로가 하나 더 있고, 이것이 운동의 대사 효과를 설명한다.
- 근거 등급 — [기전] 확립된 생리학이다. 1상 인슐린 분비 소실이 제2형 당뇨의 이른 변화라는 것은 [코호트]와 생리 실험이 함께 지지한다.
- 내가 할 것 — 공복혈당 하나로 안심하지 않는다. 식후 혈당이 먼저 나빠지는 순서를 알고, 위험인자가 있으면 당화혈색소나 당부하검사를 함께 본다.
- 모르는 것 — 베타세포가 지치는 속도와 그 개인차를 예측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같은 저항성을 가져도 어떤 사람은 평생 당뇨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