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저항성 — 현대 만성질환의 공통 뿌리
따로 온 것처럼 보이는 병들이 한 곳에서 갈라져 나온다
인슐린 저항성 — 현대 만성질환의 공통 뿌리
따로 온 것처럼 보이는 병들이 한 곳에서 갈라져 나온다 | 건강 설계 200 13화
왜 2부가 여기 있나
1부에서 도구를 만들었으니 이제 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왜 대사를 맨 앞에 놓나.
한 사람에게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지방간, 통풍, 수면무호흡증, 그리고 몇 년 뒤 당뇨가 함께 오는 일이 아주 흔하기 때문이다. 진료과는 다 다르다. 순환기, 소화기, 내분비, 호흡기. 각각 다른 약을 받고 각각 다른 설명을 듣는다. 그런데 이 병들은 한 뿌리에서 갈라진 가지인 경우가 많다.
그 뿌리의 이름이 인슐린 저항성이다. 그리고 7부(심혈관), 8부(암), 9부(노화·치매)로 갈 때 이 개념이 계속 다시 등장한다. 여기를 이해하면 나머지 부의 절반은 이미 읽은 것이 된다.
인슐린이 실제로 하는 일
인슐린은 흔히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으로 소개된다. 틀리지는 않지만 너무 좁다. 인슐린은 몸 전체의 에너지 저장 스위치다.
식사를 하면 혈당이 오르고 췌장이 인슐린을 낸다. 인슐린은 여러 조직에 동시에 명령한다.
- 근육에게: 포도당을 끌어들여 글리코겐으로 저장하라
- 간에게: 포도당을 새로 만들지 말고(당신생 억제) 저장하라
- 지방조직에게: 지방을 분해하지 말고 저장하라
- 전신에게: 지금은 저장 모드다
마지막 항목이 중요하다. 인슐린이 높으면 몸은 지방을 태우는 모드로 가지 않는다. 인슐린은 혈당 조절 호르몬이면서 동시에 지방 저장 신호다.
저항성이란 무엇인가
세포가 인슐린 신호에 둔해진 상태다. 흔히 자물쇠와 열쇠 비유를 쓰지만, 실제로는 수용체 자체보다 수용체 이후의 신호 전달 경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몸의 반응은 단순하다. 신호가 안 먹히면 더 크게 소리친다. 췌장이 인슐린을 더 많이 낸다. 그래서 저항성 초기에는 혈당이 정상이다. 인슐린이 두 배, 세 배로 일해서 정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를 고인슐린혈증이라 부르고, 여기가 이 화의 핵심이다. 혈당이 정상인데 이미 병이 진행 중인 구간이 몇 년에서 십수 년 존재한다.
이소성 지방 — 있으면 안 되는 곳의 기름
저항성이 생기는 기전으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이소성 지방(ectopic fat) 이다.
지방조직은 원래 지방을 저장하라고 있는 기관이다. 그런데 저장 용량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용량을 넘어선 에너지는 갈 곳을 잃고 간과 근육과 췌장과 심장 주위에 쌓인다. 이 조직들은 지방 창고가 아니므로, 지방이 쌓이면 기능이 망가진다.
- 간에 쌓이면 지방간이 되고, 간이 인슐린 신호를 무시하고 포도당을 계속 만들어낸다(19화)
- 근육에 쌓이면 근육이 포도당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 췌장에 쌓이면 인슐린을 내는 세포 자체가 지친다
여기서 중요한 함의가 나온다. 저장 용량이 작은 사람은 덜 뚱뚱해도 저항성이 온다. 15화에서 다룰 한국인·동아시아인의 당뇨 양상이 정확히 이 이야기다.
무엇이 함께 따라오나
인슐린 저항성이 있으면 다음이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각각을 따로 온 병으로 보면 지도가 안 보인다.
- 혈압 상승 — 인슐린은 신장의 나트륨 재흡수를 늘리고 교감신경을 자극한다
- 중성지방 상승, HDL 하강 — 간에서 지질 처리 방식이 바뀐다(112화)
- 작고 촘촘한 LDL 입자 증가 — 같은 LDL 수치라도 입자 수가 많아진다(110화)
- 지방간
- 요산 상승과 통풍
- 다낭성난소증후군 — 여성에서 인슐린 저항성과 강하게 얽힌다(172화)
- 수면무호흡증 — 그리고 이건 양방향이다. 무호흡이 저항성을 악화시킨다(87화)
- 만성 염증 표지자 상승(156화)
이 묶음에 이름을 붙인 것이 대사증후군이다(20화). 다만 대사증후군은 진단 기준일 뿐이고, 기준을 만족하지 않아도 저항성은 진행할 수 있다.
심혈관·암·치매로 가는 길
심혈관. 위 목록의 거의 전부가 죽상경화의 위험인자다. 인슐린 저항성은 심혈관질환의 상류에 있다(7부).
암. 고인슐린혈증은 세포 증식 신호와 얽혀 있고, 비만·대사 이상은 여러 암종의 위험 증가와 연관된다(129화). 기전과 역학이 함께 지지하는 영역이지만, 개입으로 암이 준다는 직접 근거는 아직 제한적이다.
치매. 당뇨가 있으면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일관되게 관찰된다. 알츠하이머를 "뇌의 3형 당뇨"라고 부르는 표현도 있는데, 이 표현은 대중적으로 과하게 쓰인다. 연관은 분명하지만 인과의 세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144화). 이 시리즈는 여기서 [코호트]까지만 말한다.
무엇이 저항성을 만드나
단일 원인이 아니다. 여러 경로가 겹친다.
- 에너지 과잉 — 저장 용량을 넘는 지속적 잉여
- 내장지방 축적 — 간문맥으로 직접 유리지방산을 보낸다(18화)
- 활동 부족 — 근육은 인슐린과 무관하게도 포도당을 끌어들일 수 있는데, 그 경로가 수축에서 나온다. 안 움직이면 이 경로가 닫힌다(53화)
- 수면 부족 — 하룻밤 부족만으로도 인슐린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실험이 있다(82화)
- 만성 스트레스 — 코르티솔은 인슐린과 반대 방향으로 일한다(93화)
- 유전 — 저장 용량과 인슐린 분비능은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 나이 — 근육량 감소와 함께 진행한다(151화)
목록이 곧 개입 지점이다. 그래서 3~6부(영양·운동·수면·정신)가 결국 이 화로 돌아온다.
되돌릴 수 있는가
여기가 좋은 소식이다. 인슐린 저항성은 상당 부분 되돌릴 수 있다.
체중 감량, 특히 간과 췌장의 지방을 줄이는 정도의 감량이 이루어지면 대사 지표가 크게 개선되고, 일부에서는 제2형 당뇨가 관해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 여러 무작위배정 시험에서 확인됐다. 관해는 완치가 아니라 약 없이 정상 범위를 유지하는 상태이고, 되돌아갈 수 있다.
운동은 체중이 변하지 않아도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한다. 근육이 늘면 포도당이 갈 자리가 늘어나고, 수축 자체가 별도 경로를 연다. 그래서 "살이 안 빠져서 운동이 소용없다"는 말은 틀렸다.
무엇을 재나
혈당만 보면 늦는다는 것이 이 화의 결론이므로, 무엇을 볼지가 실용적 질문이 된다. 자세한 것은 16·17·20화에서 다루고 여기서는 목록만 적는다.
- 공복혈당과 당화혈색소 — 기본이지만 늦게 움직인다
- 공복 인슐린과 그로부터 계산하는 지수 — 더 이른 신호(17화)
- 중성지방과 HDL의 비 — 간접 지표로 널리 쓰인다
- 허리둘레 — 가장 싸고 유용한 측정(18화)
- 간 수치와 초음파 — 지방간 여부(19화)
- 혈압
흔한 오해 셋
"설탕을 끊으면 해결된다." 정제당은 분명 문제지만, 저항성은 총 에너지·활동·수면·유전이 함께 만든다. 한 성분만 지목하는 설명은 대개 무언가를 팔고 있다.
"혈당 스파이크를 막는 것이 핵심이다." 스파이크는 결과이자 표지에 가깝고, 그것만 눌러서 저항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22화).
"마르면 괜찮다." 가장 위험한 오해다. 저장 용량은 사람마다 다르고, 한국인·동아시아인은 낮은 체질량지수에서도 대사 이상이 나타나는 비율이 서구보다 높다(15화).
정리
- 핵심 — 고혈압·이상지질혈증·지방간·통풍·수면무호흡·당뇨는 따로 온 병처럼 보이지만 상당수가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진다. 혈당이 정상인 구간에도 이미 진행 중이다.
- 근거 등급 — [RCT] 저항성이 생활 개입으로 개선되고 일부에서 당뇨 관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무작위배정 시험으로 확인됐다. 이소성 지방 기전은 [기전]과 [코호트]가 함께 지지한다. 암·치매와의 인과 세부는 [근거 불충분]이다.
- 내가 할 것 — 대사 지표를 한 항목이 아니라 묶음으로 본다. 허리둘레·혈압·중성지방/HDL·간수치·공복혈당을 같은 표에 놓고 추세를 본다.
- 모르는 것 — 저장 용량의 개인차를 미리 아는 방법은 아직 없다. 왜 어떤 사람은 비만해도 대사가 멀쩡하고 어떤 사람은 마른 채로 당뇨가 오는지는 부분적으로만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