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 무엇을 정하고 무엇을 정하지 않는 법인가
이 법의 범위를 오해하면 기대도 실망도 빗나간다
연명의료결정법 — 무엇을 정하고 무엇을 정하지 않는 법인가
이 법의 범위를 오해하면 기대도 실망도 빗나간다 | 죽음 설계 48화
이 법의 자리
한국에서 임종기 의료 결정의 제도적 기반은 이 법이다. 정식 명칭은 길고, 흔히 '연명의료결정법'으로 불린다[미확인 — 정식 명칭과 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의 현행 법령으로 확인].
이 법이 다루는 것은 크게 둘이다. ① 호스피스·완화의료(46화)와 ② 연명의료의 결정이다. 두 영역이 하나의 법에 들어 있다는 것이 한국 제도의 구조적 특징이다.
이 법이 정하는 것
[등급 A — 아래는 제도의 뼈대다. 구체 요건·서식·절차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현행 안내로 확인해야 한다 — [미확인]]
① 누가 대상인가. 임종과정에 있다고 판단된 환자. 이 판단이 관문이다(51화).
②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 특정한 연명의료 행위의 유보 또는 중단. 어떤 항목이 포함되는지는 법과 시행령이 정한다.
③ 어떻게 의사를 확인하는가. 본인이 미리 작성한 문서, 의료기관에서 작성한 문서, 또는 가족의 진술을 통한 추정. 이 셋의 요건과 순서가 정해져 있다(49~52화).
④ 절차는 무엇인가. 담당 의사와 전문의의 판단, 서식의 작성, 기록의 보존, 등록 시스템.
이 법이 정하지 않는 것
여기가 오해의 자리다.
① 안락사와 조력사망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법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허용하는 법이 아니다. 이미 임종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그 과정을 연장하는 처치를 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이 구별을 놓치면 이 법에 대한 기대와 비판이 모두 빗나간다.
② 모든 치료의 중단을 다루지 않는다. 통증 조절, 영양·수분 공급 같은 항목은 별도의 취급을 받는다[미확인 — 어떤 항목이 중단 가능하고 어떤 항목이 그렇지 않은지는 법령 정본 확인].
③ 임종과정 이전의 결정을 다루지 않는다.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단계에서는 이 절차가 적용되지 않는다. 37화의 비대칭이 여기서 나온다 — 인공호흡기를 시작한 뒤 임종과정 판단 전에 중단하는 것은 이 법의 경로로는 어렵다.
④ 의료대리인을 지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미국식 healthcare proxy와 다르다(66화에서 이 공백을 다룬다).
③이 왜 중요한가
이 화에서 가장 실무적인 부분이다.
이 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즉 이미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들어선 사람이 대상이다.
그런데 실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은 그보다 훨씬 앞이다. 응급실에서 삽관 여부를 정할 때, 중환자실 입실을 결정할 때, 기관절개를 권유받을 때. 이 시점들은 대부분 '임종과정' 판단 이전이다.
그래서 이 법만으로는 임종기 의료 결정의 전부가 해결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여전히 의료진과 가족의 협의에 달려 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 두었으니 안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문서가 작동하는 구간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 문서가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사전 문서는 무용한가. 아니다. 세 가지 이유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① 법이 적용되는 구간에서 결정적이다. 임종과정 판단 이후에는 이 문서가 가장 강한 근거다.
② 그 이전 구간에서도 근거가 된다. 법적 효력과 별개로, 가족과 의료진이 판단할 때의 실질적 기준이 된다. 52화에서 볼 '가족 진술로 추정하는' 과정에서 문서의 존재는 큰 차이를 만든다.
③ 가족을 결정의 무게에서 꺼낸다. 16화에서 본 도덕적 면책 기능이다. 이것이 실무적으로 가장 큰 효용일 수 있다.
두 개의 문서
이 법 아래에 성격이 다른 두 문서가 있다(49·50화에서 각각 다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건강할 때 본인이 미리 작성하는 문서. 나이 요건이 있고, 지정된 등록기관에서 상담을 거쳐 작성한다[미확인 — 요건과 등록기관은 현행 확인].
연명의료계획서 — 말기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담당 의사가 작성하는 문서. 이미 환자가 된 상태에서 만든다.
둘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는 누구나 지금 할 수 있고, 후자는 진단이 있어야 한다.
등록의 의미
작성한 문서는 등록 시스템에 저장되고, 의료기관이 조회할 수 있다[등급 A — 시스템의 존재는 제도의 뼈대. 구체 조회 방식은 확인 필요].
이것이 실무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종이 문서만 있으면 응급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서랍에 있는 서류는 병원이 알 수 없다.
그래서 작성은 등록까지 가야 완결된다. 그리고 가족에게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등록되어 있어도 아무도 조회를 요청하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갈 수 있다.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
간단히 적어 둔다. 한국에서 이 법의 논의는 몇 건의 사회적 사건과 판결을 거치며 형성되었다[등급 B — 구체 사건과 판결의 인용은 확인 필요 — [미확인]].
배경을 아는 것이 실무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이 법이 왜 이렇게 좁게 설계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용의 우려가 컸고, 그래서 요건과 절차가 엄격하게 만들어졌다. 이 설계가 안전장치이면서 동시에 앞서 본 한계의 원인이다.
이 법을 다른 나라 제도와 비교하면
54화에서 자세히 다루지만, 여기서 뼈대만 미리 적어 둔다. 비교하면 한국 제도의 성격이 선명해진다.
미국형. 사전지시서(advance directive)와 의료대리인 지정이 두 축이다. 대리인이 폭넓은 상황에서 본인을 대신해 결정한다. 그리고 POLST 계열 문서는 의사의 지시 형태라 응급 현장에서 즉시 효력을 갖는다.
한국형. 대리인 지정 제도가 사실상 없고, 대신 가족의 순서와 절차가 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적용 시점이 '임종과정' 이후로 좁게 설계되어 있다.
이 차이가 만드는 결과가 있다. 미국형에서는 누가 결정하는가가 미리 정해지고, 한국형에서는 어떤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정해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임종과정 판단 이전 구간의 결정이 제도 밖에 남고, 그 자리를 가족 협의가 메운다.
이것이 66화에서 다룰 '한국의 공백'이다.
이 법이 자주 오해되는 다섯 가지
법의 구조보다 오해가 실무를 더 자주 망친다. 반복되는 것들을 모아 둔다.
① "치료를 다 중단하는 것이다" — 아니다. 대상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특정 연명의료다. 통증 조절과 돌봄은 계속된다. 오히려 이 시점에 증상 관리가 강화되는 것이 정상이다.
② "안락사를 허용한 법이다" — 아니다.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는 이 법의 대상이 아니다(55·188화).
③ "가족이 원하면 중단할 수 있다" — 아니다. 요건과 절차가 정해져 있고, 의학적 판단(임종과정 여부)이 선행한다. 가족의 의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④ "쓰면 응급실에서 치료를 안 해 준다" — 아니다. 문서는 임종과정에 있다는 판단이 있을 때 작동한다. 회복 가능한 급성 질환의 치료와는 관계가 없다. 이 오해가 부모 세대에서 작성을 막는 가장 큰 이유다.
⑤ "한 번 쓰면 못 바꾼다" — 아니다. 언제든 변경·철회할 수 있다.
다섯 개 다 대화를 막는 오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부모에게 권하기 전에 이 다섯 문장을 먼저 준비해 가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장 효과가 크다(64화).
오늘의 실행
- 이 법의 범위를 정확히 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이 아니고, 임종과정 이전을 다루지 않는다.
- 사전 문서가 작동하는 구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세 가지 이유로 필요하다.
- 작성과 등록과 공유는 별개다. 셋 다 해야 작동한다.
다음 화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누가, 어디서, 어떻게 작성하는지를 실무 수준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