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연명의 비용 — 누가 부담하나
돈 이야기를 피하면 그 비용은 조용히 한 사람에게 간다
무의미한 연명의 비용 — 누가 부담하나
돈 이야기를 피하면 그 비용은 조용히 한 사람에게 간다 | 죽음 설계 57화
이 화를 쓰는 이유
임종기에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그런데 꺼내지 않아도 비용은 발생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부담한다.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대개 한 사람에게 간다 — 간병을 맡은 사람, 일을 그만둔 사람, 대출을 받은 사람.
그래서 이 화는 비용의 구조를 드러낸다. 결정의 이유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부담하는지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비용의 네 층
임종기 비용은 성격이 다른 네 층으로 나뉜다.
① 의료비 중 급여 부분. 건강보험이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 본인부담상한제와 산정특례가 추가로 흡수한다(155화).
② 의료비 중 비급여 부분. 상급병실료, 일부 검사와 치료, 선택적 처치. 여기가 예측이 어렵다.
③ 간병비. 한국에서 이 항목이 가장 크고 가장 덜 보이는 부분이다. 가족의 시간으로 지불되거나 사적 고용으로 지불된다.
④ 기회비용. 일을 그만두거나 줄인 가족의 소득 손실, 경력 단절. 청구서에 나오지 않지만 총액에서 가장 클 수 있다.
[미확인 — 각 항목의 구체 금액과 비율은 상황에 따라 크게 다르다. 건강보험공단·병원 확인 필요.]
③과 ④가 만드는 불균형
이 화의 핵심이다. ①과 ②는 대개 가족 공동으로 부담하거나 환자 본인의 자산에서 나간다. ③과 ④는 특정 개인이 부담한다.
그리고 그 개인은 대개 정해져 있다 — 가까이 사는 사람, 일을 줄일 수 있는 위치의 사람, 여성인 경우가 많다.
이 불균형이 드러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3화에서 본 순서가 진행된다. 부담이 셈으로 쌓이고, 셈은 태도로 나오고, 상속 국면에서 정확히 청구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 — 숫자로 만들기
94화에서 다룰 내용을 미리 적는다. 부담을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기록한다.
- 간병에 쓴 시간(주당 몇 시간)
- 지출한 돈(영수증)
- 이동 거리와 횟수
- 줄인 근무 시간
이 기록의 목적은 청구가 아니다. 논의 가능한 항목으로 만드는 것이다. 감정으로 남으면 원망이 되지만 숫자로 남으면 조정할 수 있다.
무의미한 연명이라는 말
이 화의 제목에 쓴 표현을 점검한다. '무의미한'은 판단이 들어간 말이다. 누가 무의미하다고 정하는가.
이 시리즈의 입장은 이렇다. 의학적으로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없는 처치를 가리키는 말로만 쓴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데 회복을 목표로 계속되는 처치, 목적지가 사라진 뒤의 장기 유지(38화).
본인이 알고 선택한 연명은 무의미하지 않다(36화). 특정 날짜까지 버티기 위해,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신념 때문에. 이런 연명은 목표가 있다.
구별의 기준은 목표가 있는가이지 기간이나 비용이 아니다.
사회적 층위
개인의 비용만이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임종 전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논의되어 왔다(180화).
이 논의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비용을 이유로 임종기 치료를 제한하자는 논리는 위험하다. 그 논리는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에게 먼저 적용된다.
더 생산적인 프레임이 있다. 원치 않는 치료를 줄이는 것. 많은 사람이 원하지 않는데도 받고 있는 처치가 있다면, 그것을 줄이는 것은 비용 절감이면서 동시에 자기결정의 실현이다. 두 목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드문 영역이다.
본인이 미리 할 수 있는 것
35화에서 적은 것을 다시 적는다. 본인이 상한을 정해 두면 가족이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자유 서술에 넣을 수 있는 문장이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를 이어 가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남은 가족의 생활이 나의 마지막 몇 주보다 중요하다. 이 판단의 책임은 나에게 있고, 너희에게 있지 않다."
이 문장이 있으면 가족이 비용을 이유로 결정하는 상황이 뜻을 따르는 것이 된다. 없으면 평생 자책한다.
반대 방향의 문장도 가능하다
균형을 위해 적는다. 반대로 정할 수도 있다.
"나는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기를 원한다. 비용은 내 자산에서 쓰고, 부족하면 이 부동산을 처분해도 좋다. 다만 자식들이 빚을 내지는 말아라."
이런 형태도 좋은 준비다. 핵심은 어느 쪽을 고르는가가 아니라, 본인이 정했다는 사실이다.
비용 정보를 미리 확보하는 법
결정의 이유로 쓰지 않더라도 정보는 필요하다. 확인할 것들이다.
- 현재 상태에서 예상되는 월 비용의 범위
- 본인부담상한제 적용 여부와 방식(155화)
- 산정특례 대상인지
- 간병 비용의 시세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이용 가능 여부
-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156화)
- 사용 가능한 유동성이 얼마나 있는지
마지막 항목이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자산이 있어도 부동산에 묶여 있으면 당장 쓸 수 없다. 이 문제는 상속 국면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146화).
비용 대화를 여는 문장들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실제로 쓸 수 있는 문장을 적어 둔다.
가족 사이에서. - ✕ "이거 얼마나 더 할 거야" → ○ "지금 매달 얼마씩 나가는지 우리가 같이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 ✕ "누가 낼 거야" → ○ "누가 뭘 부담하고 있는지 한 번 정리해 보자" - ✕ "형은 돈만 내고 끝이지" → ○ "간병 시간도 부담으로 세자"
공통점은 비난이 아니라 정리의 언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셈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지 청구가 목적이 아니다.
본인에게. - "아버지, 병원비는 어디서 나가는지 저희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 "혹시 정해 두신 게 있으세요? 저희가 판단하기 어려운 게 있어서요."
두 번째 문장이 좋은 이유는 결정권을 본인에게 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는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 자기가 먼저 꺼내면 자식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안 꺼냈을 뿐이다(7화).
'무의미'를 누가 정하는가
이 화의 제목에 쓴 '무의미한 연명'이라는 말 자체를 한 번 더 따져 둔다. 비용을 말할 때 이 단어가 슬쩍 들어오면, 판단이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의학에서 무의미(futility)는 대체로 "그 처치가 의도한 생리적 효과를 낼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건 의학적 판단이다. 그런데 일상어에서 '무의미'는 다른 뜻으로 쓰인다 — 살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두 개가 섞이면 위험하다.
구분의 기준은 이렇다.
- "이 처치로는 혈압을 유지할 수 없다" → 의학적 판단. 의료진의 영역이다.
- "이런 상태로 두 달을 더 사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 가치 판단. 본인의 영역이고, 없으면 가족의 영역이다. 의료진이 대신 정할 수 없다.
비용 이야기가 위험해지는 지점이 정확히 여기다. 비용은 두 번째 질문에만 관련되고, 첫 번째 질문에는 관련이 없다. 그런데 실제 대화에서는 비용이 첫 번째 질문의 답처럼 제시되곤 한다 — "돈도 많이 드는데 소용없습니다"처럼.
그러므로 가족이 되물어야 할 문장은 이것이다. "의학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효과는 있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두 답에 따라 결정 주체가 다르다.
오늘의 실행
- 네 층 중 ③·④를 누가 부담하는지 확인한다. 보이지 않는 부담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 본다.
- 부담을 숫자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감정이 아니라 항목으로 만든다.
- 본인의 뜻을 한 문장으로 남긴다. 어느 방향이든 좋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화에서는 장기기증과 뇌사 판정 — 죽음의 정의 자체가 문제가 되는 영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