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이라는 말의 세 가지 용법
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존엄'이라는 말의 세 가지 용법
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죽음 설계 24화
한 단어에 세 개의 뜻
죽음을 다루는 자리에서 '존엄'만큼 자주 쓰이면서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이 없다. 세 용법을 나누지 않으면 대화가 어긋난다.
① 철학·법적 용법 — 침해할 수 없는 지위.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갖는 것이고, 상태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헌법과 인권 문서의 용법이다.
② 의료·돌봄의 용법 — 경험되는 존엄. 몸을 남에게 맡기고, 씻지 못하고, 벗겨진 채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것. 이것은 상태에 따라 변한다.
③ 담론의 용법 — '존엄사'라는 합성어. 특정 죽음의 방식을 지지하는 수사로 쓰인다.
왜 이 구분이 실무적인가
세 용법이 섞이면 논쟁이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존엄을 지키기 위해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과 "존엄은 상태와 무관하므로 어떤 상태에서도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같은 단어로 다른 개념을 말하고 있다. 앞은 ②, 뒤는 ①이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토론해도 합의가 안 된다.
실무적 해법은 단어를 바꾸는 것이다. "존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
②를 구체화하면 무엇이 남나
의료·돌봄의 존엄은 추상이 아니다. 조사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구체 항목이 있다(23화).
- 대소변을 남이 처리하는 상황
- 씻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
- 옷이 벗겨진 채 여러 사람 앞에 있는 것
- 자기 이름 대신 병상 번호로 불리는 것
- 대화가 자기 머리 위로 오가는 것
- 결정에서 배제되는 것
이 목록의 특징은 전부 개선 가능하다는 것이다. 커튼을 치는 습관, 처치 전에 설명하는 습관, 이름을 부르는 습관. 큰 제도가 아니라 작은 관행이 이 항목을 좌우한다.
가족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
②의 영역에서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몸을 돌보는 일에 참여한다. 머리를 빗기고, 손톱을 깎고, 몸을 닦는다. 간병인이 있어도 가족이 하는 것과 다르다. 자기 물건을 곁에 둔다. 안경, 사진, 늘 쓰던 담요. 병원의 익명성을 줄인다. 앞에서 3인칭으로 말하지 않는다. 14화에서 본 사회적 죽음의 방지다. 호칭을 유지한다. "어르신" 대신 이름이나 관계 호칭을 쓰도록 요청할 수 있다.
③ — '존엄사'라는 말의 문제
이 말은 한국에서 특히 혼란스럽게 쓰인다. 최소한 세 가지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 연명의료의 중단·유보 —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이 다루는 영역(48화).
- 적극적 안락사 — 의료진이 사망을 초래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
- 조력사망 — 본인이 스스로 투여할 수 있게 처방·제공하는 것.
셋은 법적·윤리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언론과 일상 대화에서 '존엄사'라는 한 단어로 묶인다. 묶이는 순간 논쟁이 불가능해진다.
이 시리즈는 '존엄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55·56화에서 셋을 나눠 다룬다.
수사로서의 존엄 — 양쪽 다 쓴다
주목할 점은 이 단어를 찬반 양쪽이 모두 쓴다는 것이다.
조력사망 지지 측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말하고, 반대 측은 "존엄은 조건부가 아니다"를 말한다. 같은 단어가 양쪽 무기가 되는 것은 그 단어가 논증이 아니라 정서에 작용한다는 신호다.
이런 단어를 만나면 방법은 하나다. 단어를 걷어내고 구체적 사실로 바꿔 다시 진술해 본다. 그래도 주장이 성립하면 논증이고, 성립하지 않으면 수사였던 것이다.
존엄 치료(dignity therapy)라는 개입
②의 영역에 대한 구조화된 개입도 시도되어 왔다. 말기 환자에게 자기 삶에 대해 묻고, 답을 기록해 편집한 문서를 가족에게 남기게 하는 방식이다[등급 B — 여러 연구가 있으나 효과의 크기와 지속성에 대해서는 결과가 엇갈린다].
질문의 형식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운가, 무엇을 배웠는가, 가족이 무엇을 알기를 원하는가,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가.
이 형식은 개인이 가족과 직접 해 볼 수도 있다. 91화에서 구체적 질문 목록을 다룬다. 전문가 없이 해도 손해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①을 실무에서 쓰는 자리
철학·법적 존엄이 실무에서 작동하는 자리도 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113화), 시신의 취급, 사후 개인정보의 보호(151화) 같은 영역이다.
여기서 ①은 "이 사람에게 아무도 없어도 최소한 이것은 해야 한다"의 근거가 된다. 공영장례 제도의 논리적 기반이기도 하다.
한국어에서의 추가 문제
한국어에서는 '존엄'과 '체면'이 실무에서 자주 섞인다. 특히 노인 세대에서 그렇다.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말은 ②의 존엄일 수도 있고 체면일 수도 있다. 둘은 다르다. 체면은 타인의 시선의 문제이고, 존엄은 자기 경험의 문제다.
실무적으로는 구별이 중요하다. 체면의 문제라면 방문객을 조절하는 것으로 상당 부분 해결되고, 존엄의 문제라면 돌봄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누가 보는 것이 싫으신가요, 아니면 이 상태 자체가 힘드신가요"를 물으면 갈린다.
존엄과 자율의 혼동
마지막으로 인접 개념 하나를 분리해 둔다. 존엄과 자율(자기결정)은 자주 같은 것으로 취급되지만 다르다.
서구 완화의료 담론에서는 둘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존엄의 핵심이라는 전제다. 그런데 이 전제는 보편적이지 않다. 결정을 가족에게 맡기는 것이 스스로에게 편안한 사람도 있고, 그것이 존엄의 훼손이 아닌 경우도 많다.
실무적 함의가 있다. 부모가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고 할 때, 그것을 자기결정의 포기로 보고 억지로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 늘 옳지는 않다. 다만 하나는 확보해야 한다 —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본인이 정하는 것. 위임도 자기결정이고, 이 형태가 한국에서 훨씬 현실적으로 작동한다.
존엄이 실패하는 자리는 대개 사소하다
세 가지 용법을 나눠 놓고 보면, 실제 병상에서 존엄이 무너지는 지점이 어디인지가 선명해진다. 거창한 윤리적 갈등이 아니다.
이름 대신 병명이나 침상 번호로 불리는 것. 처치할 때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 것. 몸이 노출된 채 문이 열려 있는 것. 대화가 본인을 앞에 두고 보호자하고만 이뤄지는 것. 화장실을 스스로 못 가게 된 뒤의 처리 방식. 의식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곁에서 예후를 이야기하는 것.
전부 사소해 보이고, 전부 개선 가능하며, 전부 요청할 수 있다. 그리고 유족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도 대개 이 층위다 — 어떤 치료를 했느냐보다 어떻게 다뤄졌느냐가 남는다.
여기서 두 번째 용법(대우로서의 존엄)이 왜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한지가 드러난다. 첫 번째(내재적 존엄)는 논쟁의 대상이고 세 번째(수사)는 양쪽이 다 쓰지만, 두 번째는 오늘 요청하면 오늘 바뀐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일 중 효과 대비 비용이 가장 낮은 항목이다.
오늘의 실행
- '존엄'이라는 단어를 쓰는 대화를 만나면 구체어로 바꾼다. 무엇이 실제로 문제인지가 드러난다.
- ②의 구체 항목 여섯 개를 병실 상황에 대입해 본다. 개선 가능한 것이 대개 두세 개는 있다.
- '존엄사'라는 말을 셋으로 나눠 쓴다. 연명의료 중단·안락사·조력사망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다음 화에서는 애도 이론 — 5단계 이론이 왜 틀렸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