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은 실증 연구에서 무엇으로 정의되나
당사자·유족·의료진이 서로 다른 답을 한다
'좋은 죽음'은 실증 연구에서 무엇으로 정의되나
당사자·유족·의료진이 서로 다른 답을 한다 | 죽음 설계 23화
이 말이 실제로 조사되어 왔다
'좋은 죽음(good death)'은 감상적인 표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실증 연구의 대상이었다. 말기 환자, 유족, 의료진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묻는 조사가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졌고, 반복해서 등장하는 항목들이 있다[등급 B — 연구마다 항목과 순위가 다르며, 문화권에 따른 차이도 크다. 특정 수치를 인용하지 않는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항목들
여러 연구에서 공통으로 상위에 나타나는 것들을 모으면 대략 이렇다.
- 통증과 증상이 조절되는 것
- 자기 결정이 존중되는 것
-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 가족과 함께 있는 것, 작별할 수 있는 것
- 존엄이 유지되는 것 — 특히 배설·위생의 존엄
- 미완의 일이 정리되는 것
- 영적·종교적 필요가 충족되는 것
- 죽음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것
목록 자체는 놀랍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누가 답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진다는 부분이다.
답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여러 연구에서 반복 지적된 차이가 있다[등급 B].
당사자(환자)는 통증 조절, 자기 결정, 그리고 짐이 되지 않는 것을 높게 든다. 특히 세 번째 항목이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보고된다.
유족은 곁에 있었는지, 작별했는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는지를 중요하게 든다. 즉 관계와 목격의 항목이다.
의료진은 증상 조절과 의학적 적절성을 든다. 자기 업무 범위 안의 항목이다.
이 차이가 만드는 실제 문제
세 집단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은 실무에서 구체적인 충돌로 나타난다.
충돌 ①. 환자는 짐이 되지 않기를 원해 치료를 줄이려 하고, 가족은 곁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감각을 원해 치료를 늘리려 한다. 충돌 ②. 유족은 마지막에 함께 있기를 원하지만, 의료 시스템은 중환자실에서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충돌 ③. 환자는 집에서 죽기를 원하지만, 가족은 그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세 충돌 모두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나빠지는 구조다. 그래서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것 외에 해법이 없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를 다루는 법
이 항목은 따로 다룰 가치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고, 실제 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
문제는 이 감각이 치료 거부의 형태로 나타날 때다. 환자가 "이제 그만하자"고 할 때 그것이 진짜 자기 뜻인지, 짐이 된다는 죄책감에서 나온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가정을 바꿔서 물어보는 것이다. "돈이 충분하고 가족이 힘들지 않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답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자기결정이 아니라 배려에서 나온 포기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아버지가 원하신다"고 할 때, 실제로는 자기들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존엄이라는 항목의 구체성
'존엄'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조사에서 나오는 내용은 대단히 구체적이다. 대소변을 남에게 맡기는 일, 씻지 못하는 일, 옷이 벗겨지는 일, 자기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일.
이 구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들이 실제로 개선 가능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기저귀 교체의 방식, 커튼을 치는 습관, 몸을 가리는 순서. 병동의 작은 관행이 존엄의 경험을 크게 바꾼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방문 시 몸을 닦아 주는 것, 머리를 정리해 주는 것. 24화에서 존엄의 용법을 더 다룬다.
'좋은 죽음'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
이 개념에는 반론도 있다. 정직하게 적는다.
첫째, 규범이 된다. 좋은 죽음의 기준이 정해지면, 그렇게 죽지 못한 사람과 유족이 실패한 것이 된다. 갑자기 죽거나 혼자 죽거나 화해하지 못한 죽음은 나쁜 죽음으로 분류된다.
둘째, 문화적 편향. 위 목록은 서구 완화의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지적이 있다. 자기결정을 최상위에 두는 것 자체가 특정 문화의 전제다.
셋째, 통제 가능성의 과장. 좋은 죽음이 준비의 결과라는 프레임은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지운다(2화).
그래서 이 시리즈의 입장
셋을 받아들이되 개념을 버리지는 않는다. 대신 이렇게 쓴다.
'좋은 죽음'을 목표로 두지 않고, '피할 수 있었던 나쁜 것'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둔다.
조절 가능한 통증이 조절되지 않는 것, 본인이 원치 않은 처치가 이루어지는 것, 정보 부족으로 유족이 손해를 보는 것, 말할 수 있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아 못 한 말이 남는 것. 이것들은 명확히 나쁘고 명확히 줄일 수 있다.
이 프레임의 장점은 실패가 없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죽음도, 혼자인 죽음도 이 기준에서는 실패가 아니다.
한국 조사에서 두드러지는 항목
한국 대상 조사에서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는 항목들이 있다[등급 B — 조사 설계에 따라 다르다].
-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이 매우 높다.
- 자녀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유족 측에서 높다.
- 경제적 준비가 항목으로 등장한다.
- 반면 자기결정과 사전 의사표시의 순위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 항목이 이 시리즈의 문제의식과 직결된다. 자기결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에서 자기결정 제도를 만들면 서류만 남는다. 그래서 16화에서 본 것처럼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 자기결정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배려로.
조사가 잘 잡아내지 못하는 항목
마지막으로 한계 하나. 좋은 죽음 조사는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그래서 잡히지 않는 것이 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래 있는 경우. 이 상태에 대한 당사자의 평가는 원리상 얻을 수 없다. 조사에 잡히는 것은 그것을 지켜본 가족의 평가뿐이고, 둘은 다를 수 있다.
치매 진행 후. 인지 기능이 떨어진 뒤의 선호는 이전의 선호와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유명한 윤리적 난문이 나온다 —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중 누구의 뜻을 따를 것인가. 사전에 "그 상태가 되면 치료하지 말라"고 적어 둔 사람이, 그 상태가 된 뒤에는 평온해 보이고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때. 53화에서 다시 다룬다.
갑작스러운 죽음.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제 사망의 상당 부분이 여기 속한다.
이 세 공백을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삼되, 그 기준이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늘의 실행
- 가족 각자에게 위 항목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물어 본다. 답이 다를 것이고,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준비다.
-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오면 가정을 바꿔 다시 묻는다. 진짜 뜻인지 배려인지 구별한다.
- 목표를 '좋은 죽음'이 아니라 '피할 수 있었던 나쁜 것 줄이기'로 잡는다. 실패하지 않는 기준이다.
다음 화에서는 '존엄'이라는 말이 의료·법·일상에서 서로 다르게 쓰이는 방식을 정리한다. 같은 단어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