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문해력 — 지식이 아니라 능력이다
아는 것과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
죽음 문해력 — 지식이 아니라 능력이다
아는 것과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 | 죽음 설계 7화
왜 '문해력'인가
건강 영역에는 오래된 개념이 하나 있다. 건강 문해력(health literacy) — 정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기 상황에 적용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죽음에도 같은 개념이 필요하다. 공중보건과 완화의료 쪽에서는 이를 death literacy라는 이름으로 다뤄 왔다[등급 A — 개념 자체는 확립된 것이다. 측정 도구와 실증 연구의 세부는 문헌 확인 필요].
핵심은 지식과 능력의 구분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지식이다. 그것을 실제로 작성하고, 가족에게 설명하고, 병원에서 그 문서를 근거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능력이다. 지식에서 능력까지의 거리가 이 시리즈가 다루는 거리다.
능력을 이루는 네 요소
죽음 문해력을 실행 가능한 단위로 쪼개면 넷이다.
① 개념을 아는 것. 연명의료·완화의료·호스피스·유류분·한정승인이 각각 무엇인지. 대부분의 자료가 여기서 끝난다.
② 제도의 경로를 아는 것. 그 개념이 어느 기관에서, 어떤 문서로, 누구의 서명으로 작동하는지. 개념만 알고 경로를 모르면 실행되지 않는다.
③ 말할 수 있는 것. 가족과 의료진에게 그것을 꺼낼 수 있는 능력. 실무에서 가장 큰 병목이 여기다. 문서를 작성한 사람 중 상당수가 그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않는다.
④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 새벽 2시에 전화를 받고, 의사가 결정을 요구하고, 형제가 다른 의견을 말할 때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이건 지식이 아니라 준비와 리허설의 산물이다.
③이 왜 병목인가
말하기가 병목인 이유는 문화적이다. 한국에서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은 오랫동안 불길함이나 불효로 취급되어 왔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는 반응이 첫 번째 벽이다.
그런데 이 벽은 예상보다 얇다. 실무에서 흔히 관찰되는 것은, 당사자인 노인이 오히려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자식이 회피한다는 구도다[등급 B — 현장에서 널리 관찰되나 국내 정량 조사를 인용한 것은 아니다]. 자식은 부모가 상처받을까 봐 피하고, 부모는 자식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안 꺼낸다. 양쪽 모두 상대를 배려하다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 구조를 아는 것만으로 대화의 문턱이 낮아진다. 63~65화에서 실제 문장 단위의 스크립트를 다룬다.
④는 훈련의 영역이다
응급 상황의 판단은 성격이나 침착함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 결정의 존재 여부에 좌우된다. 그 순간에 새로 판단하려 하면 거의 반드시 기본값(가능한 모든 처치)으로 흘러간다. 이유는 셋이다.
- 정보가 부족하다. 예후를 모른 채 몇 분 안에 답해야 한다.
- 책임이 무겁다. "내가 그만하자고 했다"는 문장을 평생 지고 가야 한다.
- 감정이 최고조다. 이 상태에서의 판단은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준비의 목적은 그 순간에 판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내려진 결정을 확인하고 집행하는 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사전 문서의 진짜 기능이다 — 법적 효력보다 가족을 결정의 무게에서 꺼내는 기능이 더 크다.
대리인의 문해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역설이 하나 있다. 정작 문해력이 필요한 시점에 당사자는 대개 말을 못 한다. 그러므로 실효적인 죽음 문해력은 본인의 것이 아니라 가족의 것이다.
이 관점에서 준비는 "내가 아는 것"에서 "내 가족이 아는 것"으로 목표가 이동한다. 내가 아무리 잘 알아도 그것이 배우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면 0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실행 항목 상당수가 문서 작성이 아니라 공유의 형태를 띤다.
조직과 사회의 문해력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죽음 문해력은 주변 환경의 함수이기도 하다.
- 의료기관이 사전 의사 확인을 절차에 넣어 두었는가
- 직장이 애도휴가와 돌봄휴가를 실제로 쓸 수 있게 하는가(117화)
- 지역사회에 사별자 자조모임이 존재하는가(121화)
- 가족 안에서 이 주제를 말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개인이 아무리 준비해도 환경이 막으면 실행률이 떨어진다. 반대로 환경이 갖춰지면 준비 없는 사람도 어느 정도 보호받는다. 8부에서 이 층위를 다룬다.
문해력이 낮을 때 나타나는 신호
자가 점검용 목록이다. 아래 중 셋 이상이면 지식은 있어도 능력은 아직 없는 상태다.
- 부모의 주치의 이름을 모른다.
- 부모가 복용 중인 약을 대략도 모른다.
- 배우자가 가입한 보험이 몇 개인지 모른다.
- "연명의료"와 "완화의료"를 같은 뜻으로 쓴다.
- 가족과 죽음에 대해 5분 이상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 급성 악화 시 어느 병원으로 갈지 정해 두지 않았다.
- 내가 죽으면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어 둔 문서가 없다.
문해력은 세대를 건너간다
관찰되는 패턴이 하나 있다. 부모의 죽음을 잘 치른 사람이 자기 죽음도 잘 준비한다. 한 번 겪으면 무엇이 필요한지 몸으로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준비 없이 겪은 사람은 그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주제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금 부모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동시에 내 죽음의 준비이기도 하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문해력이기도 하다. 이 관점이 있으면 지금의 수고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게 된다.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 다음 세대는 같은 것을 처음부터 배우지 않아도 된다.
문해력을 높이는 가장 빠른 경로
지식을 늘리는 것보다 빠른 방법이 둘 있다.
첫째, 한 번 겪은 사람에게 묻는 것. 최근 3년 안에 부모상을 치른 사람은 절차의 실전 지식을 갖고 있다. 어느 서류가 몇 통 필요했는지, 어디서 막혔는지, 무엇을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지. 이 정보는 어떤 안내문보다 정확하고, 물으면 대개 기꺼이 말해 준다. 그들에게도 그 경험을 쓸 곳이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서류를 미리 한 번 훑는 것.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식이든 상속재산 분할협의서 양식이든, 실제 문서를 한 번 보면 개념이 즉시 구체화된다. 작성하지 않아도 좋다. 보는 것만으로 ①에서 ②로 넘어간다.
문해력의 반대말은 무지가 아니라 회피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둔다. 이 주제를 모르는 사람 대부분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접근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모른다. 검색하면 나오는 것을 검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해력을 높이는 작업의 절반은 정보가 아니라 회피를 다루는 일이다. 회피의 이유는 대개 셋이다 — 불길하다는 감각, 부모를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 같은 죄책감, 그리고 알게 되면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부담.
세 번째가 가장 크다. 모르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만 알면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매 화 실행 항목을 작게 자른다. 큰 과제는 회피를 강화하고, 작은 과제는 회피를 뚫는다.
오늘의 실행
- 위의 신호 목록을 체크한다. 셋 이상이면, 지식을 더 쌓기 전에 그중 하나를 사실 확인으로 채운다. 가장 쉬운 것부터 — 부모의 복약 목록을 사진으로 찍어 둔다.
- 한 사람을 정한다. 내가 아는 것을 전달받을 사람. 배우자든 형제든 친구든, 실제로 그 순간에 옆에 있을 사람이어야 한다.
- 그 사람과 15분을 잡는다. 내용은 아직 없어도 된다. "이런 걸 정리해 보려고 한다"까지만 말한다. 말을 꺼내 본 경험 자체가 ③의 훈련이다.
다음 화에서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프레임 —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과 남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를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