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URANCE RESEARCH · 죽음 설계

의료대리인 — 한국에 없는 제도를 개인이 메우는 법

법적 권한이 없어도 사실상의 권한은 설계할 수 있다

약 4분 읽기 · Updated 20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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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리인 — 한국에 없는 제도를 개인이 메우는 법

법적 권한이 없어도 사실상의 권한은 설계할 수 있다 | 죽음 설계 66화

공백의 내용

54화에서 확인한 것을 다시 적는다. 한국에는 본인이 자기 의료 결정을 대신할 사람을 지정하는 제도가 사실상 없다[등급 A — 제도의 부재는 구조적 사실. 관련 법령의 최신 개정 여부는 확인 필요 — [미확인]].

대신 법이 가족의 범위와 순위를 정한다. 즉 누가 결정하는가는 법이 정하고, 본인은 선택할 수 없다.

이 공백이 만드는 실제 문제

문제가 되는 상황들이다.

① 실제로 돌본 사람이 배제된다. 사실혼 배우자, 며느리, 오랜 친구, 동성 파트너(115화). 몇 년을 간병해도 법적 결정권이 없다.

② 관계가 나쁜 가족이 결정한다. 십 년간 연락이 없던 자녀가 순위에 있다.

③ 가족이 없는 사람. 1인 가구, 무연고(112·113화). 결정할 사람 자체가 없다.

④ 가족이 여럿인데 뜻이 갈린다. 조율할 권한이 아무에게도 없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

법적 권한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상의 영향력은 설계할 수 있다. 실무에서 의료 결정은 법적 순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네 가지 장치를 조합한다.

장치 ① — 명시적 지정 문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실무의 근거가 되는 문서다. 자유 서술로 작성한다.

"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의 의료에 관한 판단은 ○○○(관계, 연락처)의 뜻을 존중해 결정해 주기 바란다. 이 사람은 나의 가치관과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 다른 가족들도 이 지정을 존중해 주기 바란다."

이 문서가 하는 일은 셋이다.

  • 의료진에게 누구와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린다
  • 가족에게 본인의 뜻이 무엇인지 알린다
  • 지정된 사람에게 자기가 나설 근거를 준다

세 번째가 의외로 크다. 권한이 없다고 느끼면 사람은 나서지 못한다.

장치 ② — 사전 공유

문서보다 더 강력한 것이 미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족 전체가 "아버지가 큰누나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 그 상황에서 반박이 훨씬 적다. 반대로 사망 직전에 처음 알려지면 의심을 산다.

그래서 지정은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니라 알리는 것이다. 가족 모임에서 한 번 말하고, 단톡방에 기록으로 남긴다.

장치 ③ — 판단 기준의 전달

53화에서 정리한 세 문장이다. 지정된 사람에게 이것을 남긴다.

① 가치관. "나는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② 재량. "적어 둔 것과 다른 상황이 오면 네 판단을 믿는다." ③ 면책. "무엇을 정하든 원망하지 않는다. 네 책임이 아니다."

이 셋이 없으면 지정된 사람은 권한만 있고 근거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의 결정은 대개 기본값(모든 처치)으로 흘러간다.

장치 ④ — 법적으로 가능한 인접 제도

의료 결정 자체는 어렵지만, 재산과 신상에 관한 권한은 법적 제도가 있다.

임의후견 계약(165화). 본인이 판단 능력이 있을 때 후견인이 될 사람과 계약을 맺고, 나중에 능력이 떨어지면 법원의 절차를 거쳐 효력이 발생하는 제도다[미확인 — 요건·절차·권한 범위는 법령과 전문가 확인].

이 제도가 의료 동의까지 어느 범위에서 다룰 수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미확인]. 다만 재산 관리 권한만으로도 실무에서 큰 차이가 난다 — 병원비를 낼 수 있고, 계약을 할 수 있고,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노쇠·치매 궤적에서는 이 제도가 사실상 필수다(34화).

누구를 지정할 것인가

기준을 정리한다.

① 물리적으로 올 수 있는 사람. 멀리 살면 실행이 어렵다. ② 감정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③ 내 가치관을 아는 사람. 대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④ 다른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 갈등을 키우지 않을 사람. ⑤ 본인이 수락한 사람. 물어보지 않고 지정하지 않는다.

②와 ⑤가 자주 간과된다. 배우자가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지만, 배우자는 자기 상실이 겹쳐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배우자와 자녀 중 한 명을 함께 두는 조합이 실무적으로 안정적이다.

지정된 사람이 해야 할 일

지정을 받은 사람의 준비도 필요하다.

  • 본인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을 것
  • 서류함의 위치와 접근 방법을 알 것(89화)
  • 주치의와 병원을 알 것
  • 다른 가족의 연락처를 알 것
  • 자기가 못 하게 될 경우의 대체자를 알 것

마지막 항목이 61화에서 말한 "단일 실패점을 만들지 않는다"의 적용이다.

이 설계의 한계를 정직하게

이 화의 방법들은 법적 권한을 만들지 못한다. 가족이 강하게 반대하면 결국 법이 정한 순위로 간다.

그래서 정직한 결론은 이렇다. 이 공백은 개인이 완전히 메울 수 없고,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다만 실무에서 대부분의 상황은 법정 다툼까지 가지 않는다. 문서와 사전 공유가 있으면 대개 그 뜻대로 진행된다. 완전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가족이 없는 사람의 설계

이 공백이 가장 크게 벌어지는 것은 가족이 없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다. 112·113화에서 자세히 다루지만, 여기서 의료 결정에 한정해 적어 둔다.

법이 정한 순위에 아무도 없으면 의료 결정의 주체가 불분명해진다. 실무에서는 병원의 윤리위원회나 관련 절차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다[미확인 — 기관별·상황별로 다르다].

이 상황을 미리 대비하는 방법은 제한적이지만 없지는 않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반드시 등록한다. 가족이 없을수록 본인 문서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 자유 서술을 상세하게 남긴다. 추정해 줄 사람이 없으므로 스스로 적어 두는 수밖에 없다.
  • 임의후견 계약을 검토한다(165화). 친족이 아니어도 계약 상대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한다[미확인].
  • 주치의를 만든다. 오래 진료한 의사가 있으면 그가 본인의 뜻을 아는 유일한 사람일 수 있다.

마지막 항목이 과소평가되어 있다. 단골 병원을 갖는 것 자체가 준비다.

지정할 사람이 없거나, 가족이 반대할 사람일 때

이 설계의 가장 어려운 경우가 둘 있다.

① 지정할 사람이 없다. 1인 가구, 가족과 단절된 사람, 배우자를 먼저 보낸 고령자(112·113화). 이 경우 현실적인 대안은 셋이다. 가족이 아닌 신뢰하는 사람을 지정하고 그 사실을 문서와 병원 양쪽에 남기는 것, 임의후견 계약처럼 법적 형식이 있는 제도를 미리 쓰는 것(165화), 그리고 문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는 것 — 대리할 사람이 없을수록 문서가 혼자 일해야 한다.

② 지정하고 싶은 사람이 법적 가족이 아니다. 사실혼 배우자, 동성 파트너, 오래된 친구(115화). 법적 가족이 따로 있으면 병원은 대개 그쪽을 향한다. 이 경우에는 양방향 준비가 필요하다 — 지정 문서를 남기는 것과 동시에, 법적 가족에게 미리 알려 두는 것. 사후에 처음 알게 되면 거의 항상 충돌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반복되는 원칙이 하나 있다.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 관계일수록, 미리 알리는 일이 문서보다 먼저다. 문서는 다툴 수 있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은 다투기 어렵다.

오늘의 실행

  1. 지정 문서를 한 문단으로 쓴다. 법적 구속력과 별개로 세 가지 일을 한다.
  2. 가족 전체에게 알린다. 조용한 지정은 나중에 의심을 산다.
  3. 지정된 사람에게 세 문장을 남긴다. 가치관·재량·면책.

다음 화부터는 유언으로 간다. 형식 요건이 까다롭고, 요건을 못 갖춘 진심은 무효가 되는 영역이다.